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한국 축구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아침, 아들과의 단출한 식사자리에서 일이다. 올 봄 장가를 간 첫째 아들이 출가한 뒤 다소 썰렁해진 집안 분위기를 메우는 역할을 해주는 둘째 아들과 간밤에 벌어졌던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축구 경기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한국 축구는 경기력이 너무 빈약해 볼거리가 없다며 월드컵 본선에 오른 것은 아시아 지역에 본선 진출권(4.5장)이 많이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임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감히 유럽과 같은 다른 대륙의 연맹에 속했으면 9회 연속 월드컵 출전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어릴 때부터 열렬한 스포츠팬인 둘째 아들은 한국 축구에 대해 실망감이 무척 컸던 것 같았다.

전날 저녁 “아빠와 TV로 한국 축구의 마지막 월드컵 최종예선전을 보지 않겠니?”라는 제의를 했지만, 한사코 볼 필요가 없다며 거부했던 그였다. 아들은 최근 한국 축구에 대해 큰 실망을 했다고 한다. 필자는 결국 새벽에 벌어진 한국 경기를 ‘나홀로 TV’로 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축구는 재미없는 드라마같은 경기를 보여주었다. 가슴 답답한 골 결정력, 지루하게 이어지는 공수 연결, 자신감 없는 볼 키핑 등은 TV 앞에 앉아있는 많은 시청자를 답답하게 했다. 득점 없이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서도 미처 경기를 마치지 않은 같은 조의 이란-시리아 경기 결과를 수분간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다. 이란이 시리아와 2대 2로 비겨주는 덕택에 월드컵 티켓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면은 많은 이들의 기분을 더욱 맥 빠지게 했다. 극적인 승부로 많은 공감과 감동을 주지는 못할망정 짜증감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인터넷 댓글과 SNS도 부정적인 일색이었다. “월드컵 진출을 ‘당했다’” “시리아가 월드컵 갔어야 했다” “이렇게 월드컵에 진출하고 싶나? 차라리 반납해라” “이런 수준으로 월드컵 가면 ‘광탈’이다”라는 등의 실망감이 터져 나왔다. TV 경기를 보고, 비판적인 댓글까지 본 이들은 우울하고 불편했을 것이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국민적 자긍감을 높여주기도 했고, 실망감을 주기도 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올랐을 때, 국민들은 “이제야 오랜 숙원인 월드컵 본선의 꿈을 이뤘다”며 환호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기적을 이뤘을 땐 “이런 순간이 오리라 생각했는가. 더 이상 여한이 없다”며 월드컵 태극전사들을 ‘시대의 영웅’으로 칭송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에 진출하자, 한국 축구가 세계적인 강국으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며 좋아도 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게 마련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이 이끌었던 대표팀이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예선 탈락을 하자, 축구팬들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졌다.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초반부터 만족스러운 경기내용을 보여주지 못해 중도에 신태용 감독에게 지휘권을 넘겨줬을 때, 축구팬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 감독이 취임 후 처음 치른 이란전 홈경기에 이어 이번 우즈베키스탄 원정경기에서도 부진함을 반복해 마음이 썩 편치 않았던 것이다.

축구라는 종목도 생물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여건에 의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월드컵 예선은 보여주었다. 이변와 반전이 많이 일어났다. 유럽의 축구 강국 네덜란드가 지역예선에서 탈락, 충격을 주었다. 한국 축구가 지역 예선 원정 경기에서 제대로 승리를 챙기지 못한 것도 이변으로 치부하고 싶다. 

어렵게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오른 만큼 한국 축구는 앞으로 남은 9개월여 동안 더 새로운 자세로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부족한 기술과 팀웍을 다듬고 좀 더 강해진 정신력으로 더 큰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매너리즘을 털고 다시 힘차게 일어날 때, 한국 축구의 저력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제 한국축구는 단순히 9회 월드컵 본선 진출에 만족하는 그런 단계는 지났다. 아시아 수준을 넘어서 국민들이 원하는 수준의 경기를 보여줄 때, 한국 축구는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종목이 될 수 있다. 그래도 국민들은 실망을 했지만 아직 한국 축구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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