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낮달 - 오세영
[마음이 머무는 시] 낮달 - 오세영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달

오세영(1942~  )

 

내의를 갈아입다가
무심결에 창밖으로 눈이 간다

거기 흰 눈을 하고서
거짓처럼 안방을 들여다보고 있는
얼굴 하나

멀쩡하다
대낮의 저 뻔뻔한
관음증

 

[시평] 

낮에 나온 반달은 상현달일까, 아니면 하현달일까. 이제 막 보름을 향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상현달이다. 오래된 동요에서, 낮에 나온 반달을 해님이 쓰다버린 쪽박으로, 해님이 쓰다 버린 신짝으로, 해님이 쓰다버린 면빗으로 노래한 바가 있다. 밝고 밝은 해님 옆에서 빛도 발하지 못하고 그저 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노래했으리라. 그래서 버려진 그 반달을 할머니에게, 어린 아기에게, 누나에게 쪽박으로, 신짝으로, 빗으로 주고 싶다는 소박하고 깜찍한 동심이 담겨져 있는 동요, 우리는 반달하면 이 노래를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바뀐 모양이다. 낮에 나온 반달은 흰 눈을 멀건이 뜨고는 남의 집 안방이나 들여다보는 뻔뻔한 관음증의 환자. 그렇다! 흘금흘금 남의 집 안방이나 들여다보는 휘둥그레 흰 눈을 치켜 뜬 저 반달. 낮에 나온 의도는 바로 이러한 의도였던 건 아닌지. 그런 혐의를 받는구나.

내의를 갈아입다가, 내의를 갈아입기 위하여 옷을 다 벗은 나의 이 적나라한 모습을 혹 그 누가 보지나 않았을까, 하며 두리번거리다가, 창밖 벌건 대낮 천공에 떠 있는 낮달. 밤에나 나와야 하는 그 달이 낮에 나와 하늘가를 어정거리니, 그 놈의 의도는 무엇일까. 시인은 문득 낮에 나온 반달을 보며, 자신의 치부라도 혹여나 들켰을까봐 부끄러워하며, 그 부끄러움 감추기 위하여 애매한 낮달에게 공연한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있구나.  

윤석산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