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원사지 당간지주 ⓒ천지일보(뉴스천지)

♦100개의 암자가 있던 대가람 보원사지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마애여래삼존불에서 용현계곡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넓게 펼쳐진 풀밭이 보인다. 햇살이 제법 따가웠지만, 연녹색을 띤 풀밭과 그 뒤로 펼쳐진 짙푸른 숲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 그 하늘 위에 몽글몽글 하얗게 수놓인 구름 때문인지 마음만은 시원하게 확 트이는 곳. 바로 보원사지다.

백제시대 창건됐다고 전하는 보원사의 옛터로 통일신라~고려 초에 크게 융성했던 곳이자 왕사,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 탄문이 묻힌 곳이다. 한때는 주변에 100개의 암자와 1000여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하는 대사찰이었지만 지금은 석조물만 남아 있다.

보원사지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당간지주가 눈에 들어온다. 보물 제103호로 지정된 보원사지 당간지주는 높이 4.2m로 통일신라 때의 유물이다. 하늘로 쭉 뻗은 모양이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온 터줏대감 마냥 범접하기 힘든 위엄이 느껴진다.

사적 제316호로 지정된 보원사지는 백제시대의 것으로 이 절터에서 신라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형 철불 2구가 발견돼 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1967년에는 백제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는 등 보원사지는 백제와 신라, 고려 초 불교미술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있는 사적지다.

▲ 보원사지 5층석탑 ⓒ천지일보(뉴스천지)

또한 백제계의 양식 기반 위에 통일신라와 고려초의 석탑양식을 갖춘 5층석탑(보물 제104호), 통돌을 장방형으로 파내 만든 한국 최대의 석조(보물 제102호), 975년(광종 26)에 법인국사가 입적하자 광종의 지시로 세운 보승탑(보물 제105호),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보승탑비(보물 제106호) 등이 전시돼 있다.

보원사지 5층석탑 뒤로 남아 있는 금당 터로 보아 이 탑이 절의 주탑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금당 터 뒤에는 법인국사 보승탑과 보승탑비가 나란히 놓여 있다. 보물 105호로 지정된 보승탑은 지대석에서 옥개석까지 팔각의 평면을 유지하고 있어 팔각원당형의 기본양식을 잘 갖추고 있는 부도로 평가 받는다. 보물 제106호로 978년(경종3)에 건립된 전체 높이 450㎝, 비신 높이 240㎝, 너비 116.5㎝, 두께 29㎝의 장중한 느낌을 주는 보승탑비는 이수의 상부에 용연(龍淵)을 파고, 용이 사방에서 모이도록 한 조각이 특이하다.

법인국사 탄문(坦文)은 신라 말·고려 초의 명승으로 고씨(高氏)이며, 968년(광종 19)에 왕사, 974년에 국사가 됐고 이듬해 보원사에서 입적했다.

♦서산9경, 구경하세요

▲ 해미읍성 진남문 ⓒ천지일보(뉴스천지)

서산을 대표하는 것이 서산 마애여래삼존불이라하여, ‘백제의 미소’만 보고 간다면 살짝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다. ‘서산8경’에 하나를 더해 ‘서산9경’으로 업그레이드 된 서산 구경 한번 하는 것은 어떨까.

서산9경은, 제1경 해미읍성을 시작으로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제2경), 간월암(제3경), 개심사(제4경), 팔봉산(제5경), 가야산(제6경), 황금산(제7경), 서산한우목장(제8경), 삼길포항(제9경)까지 모두 9경으로 돼 있다.

신비한 미소를 머금은 마애여래삼존상을 재치고 당당히 제1경으로 등극한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성곽으로 사적 제116호로 지정됐다. 본래 해미는 1414년(태종 14) 덕산(德山)에서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이곳으로 이설된 뒤 1651년(효종 2) 청주로 옮겨질 때까지 군사의 중심지였다. 이 성은 1491년(성종 22)에 축성해 영장(營將)을 두고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으로 <여지승람>에 의하면 당시 절도사영은 해미현의 동쪽 3리에 있었으며, 석성으로 둘레 3172척, 높이 15척, 우물 세 군데, 군창이 설비돼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기도 했던 해미읍성은 전국 최대 순교성지이기도 하다. 읍성에는 수령이 300년 정도 된 회화나무가 있는데 이곳에 천주교 신자들을 매달아 고문했다고 한다. 아직도 고문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지만 해미읍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청허정에 오르면 천수만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그 경치가 아름답다. 과연 그 옛날 문인들이 이곳에 올라 시를 읊었을 만하다.

▲ 물이 들어올 때면 외따로 떠 있는 작은 섬이 되기도 하는 간월암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제3경 간월암은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작은 암자로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하고 송만공 대사가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물이 들고 남에 따라 섬이 되기도 하고, 길이 열려 걸어갈 수도 있는 이곳은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야산 줄기 상왕산에 자리한 천년고찰 개심사(開心寺). 서산9경 중 제4경인 개심사에는 보물 제143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명부전, 심검당 등이 있다. ‘마음을 여는 절’이라는 뜻의 개심사는 그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입구에서부터 ‘세심동’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표지가 보인다.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열며 개심사로 오르자는 말이다. 그렇게 입구에서 개심사까지 오르는 길은 나무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요사채로 쓰이는 심검당은 굽은 나무를 그대로 건물에 사용해 자연과 더욱 조화로운 멋을 더하고, 안양루에 걸린 ‘상왕산개심사’라는 현판은 근대의 서화가 해강 김규진의 글씨로 이 또한 자연과 어우러진 멋이 인상적이다.

어느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볼거리도 생각할 거리도 많은 서산9경. 벼랑 끝에 서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애여래삼존상을 시작으로 외따로 떠 있는 작은 섬이 되기도 하는 간월암까지, 신비로운 체험과 함께 마음의 평온함을 찾을 수 있는 곳 서산.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무더위를 서산이 주는 신비로움으로 식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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