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에 ‘여성혐오’가 뿌리 깊게 퍼져 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양상이 조금씩 다를뿐, 여성혐오는 전 세계에 만연하다. 혐오의 시대, 여성의 인권을 훼손하는 사회와 이에 맞서는 사람들을 조명해본다.

 

▲ 서울 종로구 청와대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DB

[천지일보=이솜 기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데 청와대서부터 국회의원 등 소위 ‘윗분들’의 여성혐오가 연일 두드러진다.

◆탁현민만 있고 ‘여성’은 없다

안경환(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김기정(전 청와대 안보실 2차장 내정자)  교수, 박상기 법무부 장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까지.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문재인 대통령이 꼽은 인사들의 젠더 문제가 심상치 않다.

이들 중 ‘여성혐오’ 이슈의 정점에는 탁 행정관이 있다.

그가 과거 여성을 비하하고 성인식을 왜곡시킬 수 있는 저서를 썼기 때문이다. 탁 행정관은 이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고, 여전히 논란은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문제는 탁 행정관의 논란을 끌고 가는 정치권의 방식이다.

▲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저서 남자 마음 설명서(왼쪽),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의 여성관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남성을 어떻게 일반화 했는지, 정확한 사과를 했는지,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등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탁 행정관의 거취 문제와 이에 대한 여야의 공방뿐이다. ‘여성’을 또 정치의 수단으로 소비하는 모양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권수현 부대표는 “여성이 왜 탁 행정관을 문제 삼는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성찰하지 못하고 있다”며 “여성들이 내세우는 구호를 당략으로 이용하면서 여성을 배제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DB

◆정치권의 비판이 공감 얻지 못하는 이유

야당이 탁 행정관을 비난하고 경질을 요구하는 데 여론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각 당내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았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방에 ‘관기’를 넣어주겠다던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도, ‘밥 하는 아줌마들’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도 당내에서는 큰 비난 없었고 이 의원의 경우는 개인의 사과로 끝났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을 흔든 ‘돼지발정제 강간 모의 가담’부터 시작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에게 “집에 가서 애나 보든지”, “이대 계집애들 싫어한다. 꼴같잖은 게 대들어 패버리고 싶다” 발언, 나경원 의원에게 “분칠이나 하는 후보는 뽑아서는 안 된다”, 바른정당에 대한 ‘첩’ 비유까지 홍 대표는 다양한 여성혐오적 언행을 일삼았다.

지난달 16일 토크콘서트에서는 또 추 대표를 두고 “경북여고 출신치고는 굉장히 착하다” “추 대표가 지금은 살이 좀 빠져서 그런데 예전에는 통통하니 굉장한 미인이었다” 등의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다. 6선 국회의원이자 현직 여당 대표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상화시키고 외모를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7월 KBS 2TV ‘냄비받침’에 출연한 홍 대표가 그간 자신의 ‘여성혐오’적 발언을 두고 사과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나온 말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당과 한국당 여성가족위원들은 침묵했다. ‘선택적 비난’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권 부대표는 “여야가 같은 문제를 갖고 있으면서 자신의 것은 보지 않고 상대방의 문제를 보고 있다”며 “이 와중에도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또 홍 대표의 여성혐오적 발언에 대해서는 “그런 발언을 해도 정치적인 타격을 입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계속 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도 탁 행정관의 문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실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하는데 상관없지 않냐’는 논리로 대하다 보니까 여당의 비판도 먹히지 않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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