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두만 선우(흉노족 왕)에게는 묵돌이라는 태자가 있었다. 그러나 선우는 계비가 낳은 아들을 몹시 총애하여 묵돌을 폐하고 그 아들을 태자로 봉하려고 했다.

두만 선우는 묵돌을 월지(서북쪽의 유목민족)로 보내 볼모로 잡아 두게 했다.

묵돌이 갇힌 것을 확인한 두만은 갑자기 군대를 보내 월지를 공격하도록 했다. 월지는 선우의 예상대로 볼모인 묵돌을 죽이려고 했다. 그 낌새를 알아차린 묵돌은 말을 훔쳐서 본국으로 도망쳐 왔다.

선우의 계획은 어긋났으나 그는 묵돌에게 군사 1만기를 주고 장군에 임명했다. 장군이 된 묵돌은 화살을 대량으로 만들게 하는 한편 부하들에게 말을 타고 활을 쏘는 훈련을 집중하여 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묵돌은 부하들을 모아 놓고 명령했다.

“모두들 듣거라, 내가 활을 쏘거든 너희는 내가 쏜 표적이 무엇이든 계속해서 쏘아라. 만약 따르지 않는 자는 목을 베겠다.”

묵돌은 어느 날 전군을 이끌고 사냥을 나갔다. 묵돌이 새와 짐승을 쏘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목을 베었다.

묵돌은 또 자기의 애마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부하들 중에 선뜻 행동하지 않고 활쏘기를 망설이는 자들이 있었다. 그때도 그는 모두 목을 베어 버렸다.

훈련을 마친 어느 날이었다. 묵돌은 자신의 애첩에게 화살을 날렸다. 부하 가운데 당황해 활을 쏘지 않는 자들은 또 목이 베였다.

그렇게 엄격하게 훈련을 치른 뒤 묵돌은 또 다시 사냥을 나갔다. 이번에는 아버지 두만 선우의 애마에게 활을 쏘았다. 그러자 부하들은 모두가 화살을 당겼다. 묵돌은 비로소 부하들이 자신의 명령에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얼마 뒤 그는 아버지 두만을 따라 사냥을 나갔다. 그는 사냥 중에 아버지 두만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과연 부하들도 일제히 화살을 날려 두만 선우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묵돌은 이어서 계비와 이복형제를 따랐던 중신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마침내 묵돌은 스스로 선우 자리에 올라 왕이 됐다.

묵돌이 선우에 올랐을 당시 동쪽에서는 동호가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묵돌이 부왕을 죽이고 선우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소식은 곧장 동호 왕의 귀에 들어갔다. 동호 왕은 사자를 보내 두만이 사용하던 천리마를 달라고 묵돌에게 요구했다.

묵돌은 이 일을 측근들과 의논했다. 그러자 측근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천리마는 우리의 보배이오니 거절함이 옳습니다.”

그러나 묵돌은 “한 마리의 말을 아낌으로써 이웃 나라와의 우의를 저버릴 수는 없다” 하고는 군신들의 의견을 누르고 동호 왕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

묵돌이 자신들을 두려워한다고 판단한 동호 왕은 얼마 뒤 사자를 보냈다. 이번에는 후비 하나를 달라는 요구였다. 묵돌이 다시 측근들과 의논하자 그들은 모두 화를 내었다. “후비를 요구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동호의 무도함에 이제 참을 수 없소이다. 부디 공격 명령을 내려주소서.”

그때도 묵돌은 “계집 하나를 아낌으로써 이웃과의 우의를 저버릴 수는 없다” 하고 자신이 총애하는 후비 하나를 동호에게 보냈다.

동호는 더욱더 교만해지더니 이윽고 국경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흉노와 동호의 중간에는 천여 리에 걸쳐 불모의 황무지가 있었다. 그것이 천연의 경계선을 이루어 두 나라는 각각 경계병을 세우고 있었다. 동호는 이 황무지에 눈독을 들이고 묵돌에게 일방적으로 통고해 왔다.

“귀국과 우리나라의 경계가 되고 있는 황무지는 귀국에 있어서는 쓸모없는 땅이다. 그러하니 이 황무지는 우리가 차지한다.”

묵돌은 또 다시 대신들과 의논했다. 그러자 몇 측근이 말했다.

“아무 쓸모없는 땅이니 주어도 괜찮겠지요.”

그 말을 듣고 묵돌은 몹시 화를 내었다.

“땅은 나라의 근본이므로 동호에게 줄 수 없다.”

그리고는 동호의 요구에 찬성한 측근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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