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건동 화백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건동 화백 인터뷰

[천지일보=서영은 기자] “勁風蘭不折(경풍난불절, 강한 바람에도 난은 꺽이지 않는다). 인생은 이런 난의 정신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미술전시회를 다니면서 항상 느끼는 건 ‘작품은 곧 작가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관람객은 전시를 보며 작품에서 묻어나오는 작가의 생각을 고스란히 전달받는다. 지난 10일 자신을 ‘늙은 할아버지’라고 소개한 한건동(75) 화백을 서울미술관에서 만났다. 환한 미소로 반기는 한 화백의 표정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평생 청주에서 살았던 시골 촌놈이 서울에서 이렇게 전시회를 열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말하는 한 화백은 겸손함이 묻어나는 작가였다.

난을 친 이후 40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에게 보이기가 부끄럽다’며 전시를 고사하다가 2000년 “결식아동을 위한 전시회를 열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첫 전시회를 열게 됐다. 서울에선 벌써 3번째 전시다.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한 화백은 난과 함께 걸어온 지난 50년의 세월을 40여 점의 묵난화를 통해 보여줬다.

20여 점의 전시작 중 눈에 띄는 것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김연아를 묵으로 희미하게 그려낸 뒤 그 위에 난을 그린 작품이다. 김연아의 연기 장면 위에 지조 있게 그려낸 난은 절도와 부드러움을 고루 갖춘 절묘한 조화를 이뤄냈다.

▲ 세계최초 금속활자 직지와 상당산성을 배경삼아 그려낸 난화, 그리고 그 위에 적힌 화재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한 화백의 작품은 가늘고 섬세하면서 소박하고 여유롭다는 것이 특징이다. 여백을 충분히 활용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평온함을 더해 준다.

하나의 난을 칠 때 걸리는 시간은 0.5초. 새벽 3시에 일어나 먹을 간다는 한 화백은 “먹을 가는 동안 심신이 단련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미술은 손의 솜씨가 아닌 마음으로 그려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난은 난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한 화백은 마음에서 느껴지는 그대로의 난을 한지에 쳐야 한다고 말한다. 마음에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면 난을 쳐내지 못할 뿐 아니라 친다 하더라도 좋은 난화를 그려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작품은 자신을 만들어낸 주인을 닮는다고 했던가. 작가가 그려낸 난은 주인과 많이 닮아있었다. 그에게서 세상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깨끗함이 느껴졌다.

꽃 한 송이 함부로 꺾지 않는다는 한 화백은 “들에 피어있는 민들레를 보라. 자연은 하늘이 만든 작품이다. 내 작품이 하늘의 작품에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 모두가 난의 깨끗함과 견고한 정신을 받아 난처럼 살아가길 원한다”는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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