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의 모습이다. 오사카의 밝은 불빛 속에 가려진 낡고 볼품없는 여행자용 호텔은 어딘지 모르게 더 정감이 간다. 너무 오래 입어 너덜너덜해진 청바지를 입은 덴샤(電車) 안의 청년은 여유롭기만 하다.

“이 나라엔 낡고 해진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문화가 존재한다. 난 언제나 일본의 이런 면이 부러웠다. 새롭고 좋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낡은 걸 사용하면서도 자기 스스로 당당한 사람들의 나라. 남들의 시선 따위. 서로를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불쾌한 공기 따위. 사실, 이들처럼 무시하고 살면 그뿐인 거다.(p91)”

저자는 일본 안의 ‘낡음’을 사랑한다. 낡은 것들은 오래돼서 더 새롭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 ‘오래됨’을 사랑한다. 낡은 것을 ‘창피함’으로 여기는 우리 인식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저자는 오사카 고베 나라 주고쿠 나가사키 교토 도쿄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에 감성을 담아 저마다의 사연을 풀어낸다. 200여 가지의 짤막한 이야기는 일상적이면서도 전혀 식상하지 않다.

오사카의 저녁 바람은 상큼한 자유의 냄새를 풍긴다. 도쿄에 밀린 ‘만년 2등의 도시’지만 도쿄만큼 억척스러울 필요도, 교토만큼 전통과 규율에 매일 필요도 없다. 재미와 자유 그리고 유쾌함이 넘쳐나는 그곳은 외롭지 않다. 가식에 덧칠되지 않은 오사카 거리의 한쪽에서 처량한 거리의 연주자는 자신의 삶을 노래한다. 해진 청바지와 낡은 기타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고베는 아픔을 안고 사는 도시다. 강진이 4500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수십만 명에게 슬픔을 남겼다. 그래서였을까. 고베 출신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영혼의 울림이 있다. 오사카가 해맑고 유쾌한 웃음을 짓는다면, 고베는 온갖 풍파를 겪은 수수하면서도 조용한 미소를 머금는다.

도쿄는 ‘일본인’의 도시다. 용감하면서도 겁쟁이며, 예의바르면서도 불손하고, 순종적이면서도 반항적인 그네들의 성격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곳에는 오래됨과 새로움이 가득하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최신 기기가 즐비한 번화가가 있는가 하면 낡고 허름한 식당이 10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사건이 매일 밤 벌어지지만, 감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질서를 지키는 곳. 모순투성이지만 동시에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은 도시, 도쿄. 우리는 그곳을 ‘일본’이라 부른다.

강한나 지음 / 큰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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