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종 적폐청산’을 외치며 단식에 돌입했던 명진스님이 단식 18일째인 4일 오전 10시 10분경 서울 종로구 우정국 앞마당에서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원로모임·재가자들 “스님의 뜻 이어 받겠습니다”
조계종 측 “교권 위협하는 세력 단호히 대처할 것”

[천지일보=이지솔 인턴기자] “명진스님, 뜻 이어받아 우리가 조계종 적폐청산에 앞장설 테니 이제 그만 병원에 가셔서 치료를 받아주세요.”

‘조계종 적폐청산’을 외치며 18일째 단식을 이어온 명진스님이 건강악화로 4일 오전 결국 병원으로 이송됐다. 명진스님은 전날 악화된 몸 상태에도 더 버텨보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재가자들의 다짐을 담보로 병원이송을 수락했다.

이날 오전 조계사 일주문 바깥쪽에 마련된 단식농성장에는 명진스님을 지지하는 재가자들이 가득했다. 명진스님이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때는 오전 10시 10분경. 앞서 오전 9시 30분부터 재가자들은 명진스님을 대신해 단식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그간 수불스님 등 교계 내외 인사들의 단식 중단을 요청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명진스님은 재가자들의 이러한 결정에 수긍하고 합장한 채 응급차에 실렸다.

명진스님 측 관계자에 따르면 의료진이 스님을 진찰한 결과 일주일 전부터 저혈당이 지속됐고 이틀 전부터는 혈압마저 떨어졌다. 이날 오전에는 저체온 증상이 나타나 쇼크 등 긴급 상황이 우려돼 시급히 단식을 중단해야 할 상태였다. 전날 기준 명진스님의 체중은 10㎏이나 줄었고, 혈압은 110/50이었으며, 저혈당 증세가 확연했다.

스님이 이송되기에 앞서 전국선원수좌회, 청정승가공동체구현과종단개혁연석회의(연석회의),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시민연대(시민연대)는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명진스님에게 단식 중단을 요청하며 자신들이 단식을 이어가겠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더 이상의 단식은 스님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뿐 아니라 저희의 죄스러움을 견딜 수 없다”면서 “스님께서 목숨 걸고 이루고자 했던 그 뜻을 저희가 이어받아 조계종의 적폐를 청산하고, 반드시 건강한 시부대중공동체를 이루겠다”고 호소했다.

기자회견 후 명진스님은 아름다운연구소 김정기 한의학박사가 미리 요청한 응급차에 실려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스님은 응급차에 옮겨지기 전까지 합장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명진스님이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던 곳 맞은편에서 맞불 농성을 진행한 조계사 호법단 천막안의 스님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편 단식 9일째를 맞았던 효림스님은 악화된 건강 때문에 2일 저녁 녹색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평소 지병을 앓고 있었던 스님은 단식으로 혈당수치가 낮아지면서 쇼크 위험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효림스님의 단식은 용주사 중진 비대위원장 대안스님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명진스님의 뒤를 이어서는 용상 스님과 연천 스님이 함께 단식에 돌입했다.

명진스님 측은 단식을 강행하며 조계종 측의 변화를 촉구할 방침이다. 오는 14일에는 승려대회 및 범불교대회를 열고 적폐청산을 위한 대규모 문화제도 개최할 예정이다.

▲ 서울 종로구 우정국 앞마당에서 명진스님의 무기한 단식 농성이 이어진 가운데 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 측도 지 난 달 25일부터 명진스님 단식농성장(사진 왼쪽) 맞은편에 천막을 치고 묵언정진 맞불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DB

그러나 종단 측과의 접점은 없어 보인다.

평행구도를 달리던 종단 측은 최근 더 강력하게 명진스님 측을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조계종 측은 ‘교권을 위협하는 세력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31일 조계종 중앙종회 여권 종책모임인 화엄회는 성명을 내고 단식 중인 명진스님에 대해 “종단 위상을 실추시키고, 종법이 정한 징계 절차를 철저히 외면해 제적을 당하고도 ‘징계철회’를 외치며 단식에 돌입한 명진스님의 행위는 이율배반적 행태”라고 비난했다.

또 화엄회는 “중앙종회의원으로서 우리는 부처님의 정법에 따라 종단의 위상과 존엄을 훼손하고 자정 노력마저 부정하는 오늘의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며 “구종의 마음으로 교권을 위협하는 외부세력에 단호한 자세로 대처할 것이며, 사실과 다른 왜곡된 내용의 유포로 종단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묵과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경고했다.

현재 조계종과 명진스님 측 간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가운데 갈등의 골은 계속 깊어져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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