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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평론] 관리는 무릇 백성을 복되게 해야 한다 (1)
뉴스천지  |  newscj@newscj.com
2017.09.03 22: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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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는 유능하고 청렴한 지도자가 꼭 필요하다는 뜻인 바, 무엇보다 중앙의 정치지도자들이나 지방자치단체의 단위 기관장을 막론하고 공적 책임을 맡고 있는 공직자들이 원칙과 소신을 지켜 국민을 편하고 복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관리들이 인격적인 측면과 업무 수행능력에서 각자 임무를 다 해내기란 예나 지금이나 쉽지가 않다. 그래서 모범을 삼으려 옛 성현이나 청백리의 언행을 들춰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세종 때 명재상 황희(黃喜, 1363~1452) 정승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조선조 최장수 재상인 황희 정승은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 리더십을 발휘해 왕조의 안정을 꾀했던 인물로 당시만 해도 문무백관의 본보기로 일컬어졌고, 후세대까지 요즘에 들어서도 청백리로 칭송받고 있다.

중국 청나라 시절 우성룡이라는 청백리가 있었다. 사실 나는 우성룡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지난 8월부터 국내 중국드라마 전문채널인 아시아앤에서 방영되고 있는 ‘우성룡’ 드라마를 보고서야 그가 중국역사에 길이 남아있는 청백리였음을 비로소 알게 됐다.

굳이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중국 청나라 때 관리였던 ‘우성룡’이 보여준 공인으로서의 충정과 멸사봉공이라는 공직 자세 때문이다. 지금처럼 사드 문제로 한국과 중국 양국의 신뢰에 틈새가 나 있는 마당에 중국 드라마를 소개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꺼림칙하기도 하지만 대국적 견지에서 본다면 정치와 문화는 다른 영역이고, 또 정치적·경제적 양국 간 틈새가 메워져 정상적인 관계가 다시 이어질 것이라 믿기에 이 글을 쓰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현실의 한중관계는 차치하고서라도 중국 청백리가 보인 ‘백성을 위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실들은 나라나 시대를 불문하고 관리자들이 지녀야 할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7일부터 9월 20일까지 방영되는 ‘우성룡 : 천하제일청백리’는 이제 중반부에 들어서고 있다. 총 40부작 가운데 8월말까지 18부가 방영됐으니 앞으로 22부작이 남아 있는 바 관심을 갖고 보니 정말 흥미진진하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6시부터 2회 연속 방영되는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시내에 외출했다가도 시간을 맞춰 귀가하기도 하는데, 지난 금요일은 방영되지 않는 날임에도 깜빡 잊고서 허겁지겁 귀가한 일도 있을 만큼 이 드라마는 재밌다.

역사드라마는 시청자의 인기를 끌기 위해서 각색할 수 있겠으나 역사에 남겨진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할 때에는 그가 지낸 관직, 행적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므로 달리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그렇게 볼 때에 ‘우성룡’ 드라마는 픽션(Fiction)이 아니라 실제 일들을 구성한 넌픽션인 만큼 드라마를 보면서 중국에 이런 훌륭한 청백리도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성룡(于成龍, 1617~1684)은 중국 산서성 작은 고을에서 태어나 마을서당을 다녔고, 명나라 숭정12년(1639)에 향시에 합격했지만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부친 사후에 강희황제가 인재를 충원하기 위해 이전에 과거시험에 합격한 공생을 대상으로 ‘북경 보결’을 실시했다. 북경에 모여 한 사람씩 추첨함에서 근무지를 고르면 이부에서 그곳으로 발령을 냈는데, 우성룡이 뽑은 곳이 북경보결의 벼슬자리 가운데 가장 험지인 광서 유주 나성현이었다. 계림 인근의 작고 황폐한 마을 나성현의 지현이다. 요즘으로 치면 면장(面長) 정도의 지위로, 그곳에 임명된 것은 그 자의 복불복(福不福)이요, 운명이 아닐까.

우성룡이 임지로 떠나기 전날, 마을 훈장인 장인은 공자 말씀을 요약한 책을 선물하면서 사위에게 신신당부한다. “관리란 무릇 백성을 복되게 해야 한다”는 금과옥조(金科玉條)다. 사위는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두 달 동안 걸어서 임지에 당도해보니 나성 지현은 오랫동안 공석이었다. 한 사람은 임명된 지 2일 만에 사람 살 곳이 아니라며 도망갔고, 또 한 사람은 두 달 만에 도둑에게 살해됐으니 나성현은 치안이 부재했고 황폐한 마을이었다.

나성현 부임 첫날에 우성룡은 텅 빈 관아를 청소하면서 관청 벽에 대련을 썼다. ‘머리에 하늘을 이고 가슴에 천리를 품고서, 눈앞의 척박한 땅에서 백성과 함께 하리라(頭上有靑天做事要在子天理 眼前是瘠地存心與民共治).’ 이 글은 희로애락을 백성들과 함께하면서 고장의 평화와 주민들의 안정을 도모해 나가겠다는 각오였으니, 스스로 다짐한 평생 공인으로서의 약조였다.

우성룡은 마흔 다섯의 늦은 나이로 출사(出仕)했다. 첫 임지도 도적떼들이 활개를 치는 오지 중의 오지(奧地)였으니 그곳에서 정상적인 마을을 이루는 데 얼마나 고생했겠으랴. 그는 치안을 강화하면서 백성들이 농사에 힘쓰도록 들녘을 돌아다니면서 민가의 고충을 들어 처리했다. 나성현 지현 6년 동안 청렴과 위민을 근본으로 삼은 우성룡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공직에서의 승진을 거듭하는데, 앞으로 고난도 있겠지만 청백리가 향하는 걸음걸음이 정말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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