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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건축가
내가 자라난 곳은 화려하고 복잡하거나 거창한 곳이 아니었다.

맑은 웃음이 있는 부모님이 함께 살던 곳이다. 여건이 좋지 않게 되며 마음에 없는 말이 입에서 나오고, 몇 번 듣다 보면 익숙해지기도 하지만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없으면 얼굴이 굳어지기 십상이고 저절로 감정이 격하게 변하기도 한다.

집안공기는 가족들이 순식간에 알아차리게 되는데 특히 어릴수록 금세 그 변화를 빠르게 느낀다. 그래서 아이들은 항상 부모의 얼굴을 먼저 쳐다보고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그런 곳이 우리가 살던 집이었다. 집은 가족이 머무는 곳이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공기를 공유하게 된다.

아이가 아프면 금세 공기가 탁해지고 가족 모두가 호흡이 다급해진다. 거친 생각들이 머리에 지나간다. 아이가 즐거워하면 공기가 따뜻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어디 누가 아프지만 않고 걱정거리가 없으면 그저 편안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집은 가족의 공기를 만들어 주는 공간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가족의 마음이 담긴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다.

아이가 스스로는 한 발짝도 떼지 못할 때도 아이가 자라난 후를 대비해서 미리 계획을 세워야 했고, 입도 뻥긋 못할 때도 귀를 기울이며 아이가 어떤 말을 할지 들어보기도 했다.

집도 마찬가지로 처음 지어보는 것이지만 다 지어진 후를 머릿속으로 구상해야 하고 가족의 삶과 생활을 녹인 집을 짓기 위해 남에게는 하지 않을 가족이야기도 서슴없이 털어 놓게 된다. 좋은 집을 지으려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럼에도 무엇이 어떻게 될지 전전긍긍하며 고민할 것이다.

아이가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도 집짓기는 계속된다. 부모는 끊임없이 집을 고민하고 조금이라도 놓치는 것이 없는지 되짚어볼 것이다.

결국 부모의 사랑이 집이 되는 셈이다. 공간의 구성, 사용성, 색상의 선택, 본능을 자극하는 질감, 절대적인 조화 등을 따져보며 자신들의 삶과 맞는지 연신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잠을 자는 순간에도 훗날 자라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별 탈 없이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울까를 신경 쓴다고 이것저것 직접적인 간섭을 하다보면 알 수 없는 저항감과 보잘 것 없는 좌절감만 키우는 꼴이 된다. 괜한 신경질만 생겨서 스스로 허탈감만 증가하고 태어나서 누려야 할 자유스러움은 온데간데없고 쓸모없는 실의에 빠지고 말 뿐이다.

집은 자연스런 공간의 구성과 마음을 앉힐 편안함이 전부가 아닐까? 그리고 자라서 되돌아볼 나의 고향 같은 집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부모가 같이 있었던 집, 내 자식도 같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집, 나 없이 내 자식이 또 살 수 있는 집이면 더 없이 좋겠다. 천 년, 만 년 나의 가족이 남아서 살아가더라도 적합한 집이면 그것으로 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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