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인권위원회. ⓒ천지일보(뉴스천지)DB

인권위, 출범까지 ‘우여곡절’
인권 침해 사건 묵인 논란
피해구제 없는 권고 지적
“인권 개념, 시대마다 달라”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지난 5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위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정부 부처의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이고 인권위의 대통령 특별보고도 다시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한층 높아졌고 최근까지 논란이 된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인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올라갔다. 이러한 가운데 인권위가 개선할 부분이나 인권 의식 개선에 대한 주장도 나온다.

인권위가 변화해야 할 점은 무엇이고 또 인권을 바라볼 때는 어떤 시각이 필요한 지에 대해 인권위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인권을 연구해온 이창수 법인권사회연구소 대표에게 설명을 들어봤다.

◆인권위, 2001년 11월 정식 출범

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지난 2001년 11월 25일 정식으로 출범했다.

사실 우리나라에 인권위가 설립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난 1993년 6월 비엔나세계인권회의에 참여했던 ‘한국민간단체공동대책위원회’가 처음으로 정부에 국가인권기구 설치를 요구했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야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난 1998년 9월 ‘인권법제정 및 국가인권기구설치 민간단체 공동추진위원회’는 국가인권기구의 법무부 산하기관화를 반대하며 헌법기관에 준하는 독립성·자율성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1999년 4월부터 2001년 4월까지 약 3년 동안에는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와 권한 문제 등을 놓고 법무부와 인권단체의 갈등이 이어졌다. 결국 2001년 5월에 들어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제정·공포됐고 같은 해 11월 25일에 발효되면서 인권위가 출범하게 됐다.

인권위는 국가기구이지만 입법·사법·행정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기구의 성격을 갖는다. 또 준사법기구로서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조치를 할 수 있다. 법·제도·정책·관행 등을 조사·연구하는 인권위는 권고와 의견 표명을 통해 인권 향상을 도모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이 있음에도 인권위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10년 11월 1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유남영·문경란 상임위원이 당시 현병철 인권위 위원장의 독단적인 조직운영과 인권위 독립성 훼손, 역할 왜곡에 항의하며 동반 사퇴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인권위 직원들도 내부 게시판에 현 위원장의 파행적 운영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인권위는 중요 인권 침해 사건을 묵인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나 진주의료원 강제퇴원 환자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긴급 구제 요청을 기각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 대한 경찰의 사찰과 인권 침해 논란, 단식농성과 세월호특별법 이슈에 대해서도 직권조사를 하지 않았고 성명조차 내지 않았다.

◆“권고 자체보다 내용이 중요”

새 정부에 들어 인권위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가 올라가고 정부 부처의 인권위 권고 수용률도 높아지고 있지만 이창수 대표는 인권위의 권고와 의견 표명은 그 자체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권고와 의견 표명에 담고 있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권위는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욕을 들었다는 진정이 들어왔을 때 ‘해당 경찰에 대한 인권교육 실시’와 같은 권고를 많이 한다”며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개선한다는 점에서 미래엔 나을지 모르겠지만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가는 것이고 피해구제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서가 아닌 외부에서는 ‘욕 한 번 먹은 걸 갖고 왜 그러느냐’라는 생각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적으로 경찰서 안에서 수사를 받는 과정 중에 욕을 들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위압감을 느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 대표는 인권위가 인권과 관련한 재판에 대해 마땅히 의견을 내야할 것을 안 내는 경우가 있다며 그 대표적인 예로 ‘용산 참사’ 관련 재판을 꼽았다.

그는 “인권위가 모든 재판에서 의견을 안 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권 문제가 걸린 중대한 사안의 재판인데도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인권 전담기구이자 국가기구로서 입법이든 행정이든 사법이든 인권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견을 낼 수 있는) 그런 권한을 제대로 사용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며 “국민의 신뢰를 얻고,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인권위의 힘”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현행 법률에서 보호하지 못하는 부분이라도 인권 문제와 관련 있다면 피해구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하고, 잘못된 관행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 문제에 대해 단순히 법률적으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차별이 발생해도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예를 들어 주거 임대 거래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편견을 가진 집 주인이 임대 신청자가 성소수자인 것을 알고 임대를 거절하는 경우, 거절 자체만을 두고는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성소수자의 입장에서는 성소수자가 아니었다면 임대할 수 있었을 부분이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부분에서 ‘차별금지법을 만들자’라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사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인권위가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넓혔어야 했고 차별사건이 있었을 때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면서 성소수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인권 개념, 시대마다 달라져”

이 대표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시대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창조적’으로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런 이유에서 인권은 늘 현 제도보다 한 단계 앞서 간다고 했다.

그는 “‘예쁘다’라는 표현은 과거 여성들에게는 주로 칭찬으로 사용됐다”며 “하지만 지금은 경우에 따라서 성희롱으로 오해하게 돼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이처럼 시대마다 인권의 개념은 새롭게 창조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인권에 대해 ‘~권’으로 개념을 나누는 것은 편의적으로 나눈 것이지 그것이 인권의 본질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나눠 생각하더라도 종합적인 관점에서 문제가 없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 참정권에 대해 살펴보면 법적으로는 분명 참정권이 있지만 투표소가 장애인 이동이 어려운 장소에 있어 투표에 방해가 된다면 사실상 참정권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끝으로 인권 침해 문제는 예방적 차원에서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염전 노예’ ‘배추 노예’ 등의 문제는 다른 지역에서 또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예방적 차원에서 전수조사 등을 하면서 완벽하게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권문제와 관련해 인권위가 언제든 개입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정착돼야 예방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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