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포 ‘신푸른바다횟집’ 먹갈치구이. ⓒ천지일보(뉴스천지)

가을 갈치 이야기
칼치나 ‘도어(刀魚)’라고도 불려
10년 만에 유례없는 ‘대풍’ 맞아
조림·구이 요리에 낚시도 ‘인기’

[천지일보=이솜 기자] ‘매콤달콤한 갈치 조림 양념에 흰 쌀밥을 자박자박 비빈다. 그 위로 슬쩍 비치는 은빛 껍질 안 하얀 속살 한 점을 올린다. 여기에 양념이 배인 무 한 조각과 양파까지 올려 크게 한 입.’

갈치 철이다. 정확히 말하면 9월 말에 씨알이 가장 커진다지만 최근 수산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생선이니 ‘철’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갈치는 칼치 또는 도어(刀魚)라고도 불리는데, 일본에서도 갈치를 칼처럼 생겼다고 ‘太刀魚( タチウオ)’로 쓴다. 중국어로는 ‘帶魚’라고 부르는데, 허리띠란 뜻이다.

올해는 특히 국내산 갈치가 10여년만에 유례없는 대풍을 맞았다고 한다. 갈치 대풍으로 ‘금갈치’ 시절보다는 값이 내렸을 법도 한데, 수산시장과 식당을 찾으니 한 번 오른 값이 기대만큼은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갈치는 성장발달을 돕는 아미노산인 라이신과 EPA와 DHA 등 영양소가 풍부하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맛’이 좋아 찾을 수밖에 없다.

제철을 맞은 갈치. 대표적인 갈치 요리인 ‘조림’과 ‘구이’를 찾았다.

지난달 22일에는 서울 중구 남창동의 남대문 ‘갈치 골목’으로 향했다. 이곳은 1988년 전후로 당시 저렴했던 갈치를 매콤하게 조리해 유명해진 맛 골목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골목 내 갈치 음식점은 대부분 방송 출연을 안 한 집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데, 이날은 20년 이상 자리하고 있는 ‘호남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로 붐빌까 일부러 점심시간 전에 방문했음에도 자리가 부족해 한 노부부와 합석해 먹게 됐다. 관광객도 많지만 주변 상인들과 직장인들도 꽤 보였다.

갈치 조림 1인분을 주문하자 반찬이 먼저 나온다.

▲ 갈치조림에 함께 나오는 갈치튀김도 별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갈치 튀김’. 구이일까 생각하고 한 입 베어보니 ‘튀김’이다. 오픈형 주방이라 조리하는 과정을 보니 말 그대로 뜨거운 기름에서 튀기고 있었다. 바삭하게 튀겨진 갈치는 고소했다. 또 뼈째 먹어도 무리가 없어 간편하기도 했다.

갈치 튀김을 다 먹어 입 안에 기름기가 맴돌 무렵 이어 ‘갈치 조림’이 등장했다. 붉은 자태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재료는 간단해 보인다. 토막 낸 갈치 4덩이에 무 2조각, 파 등.

▲ 남대문 ‘호남식당’ 갈치조림 한상. ⓒ천지일보(뉴스천지)

조림의 생명은 양념 맛 아닐까. 한 입 먹어보자 달콤하면서도 살짝 칼칼한 것이 구미를 더 당긴다. 양념이 합격이니 여기에 졸여진 갈치와 무 등은 말할 것이 없겠다. 간이 조금 세다고 느껴지지만 함께 나온 계란찜이 그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니다. 계란찜과 함께 먹으면 다소 자극적인 간을 한 번에 잠재우면서 맛은 더욱 살린다. 갈치와도 잘 어울렸다.

그러나 최고는 역시 흰 쌀밥과의 조화다. 한 술 크게 뜬 흰 쌀밥에 갈치 살을 발라내 올리고 입에 넣었다. ‘혼밥(혼자 먹는 밥)’의 유일한 단점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찬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닐까. 합석했던 노부부마저 자리를 뜬 후라 ‘맛있다’고 소리내 말할 수가 없어 아쉬움이 컸다.

눈 깜짝할 새 한 그릇을 해치우고 계산을 하는 중에 요리하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8개의 조림 그릇과 커다란 튀김 그릇을 놓고 한 번에 조리하고 있었다. 골목 내 식당마다 대부분 이렇게 조리하는 모습을 밖에서도 구경할 수가 있는데, 꽤 눈요기가 된다.

조림을 맛봤으니 이번엔 구이가 궁금했다. 구이는 갈치 본연의 맛을 살리기 때문에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전남 목포로 향했다.

갈치는 크게 은갈치(비단갈치)와 먹갈치로 나뉘는데, 제주에서는 은갈치를 치지만 목포는 먹갈치다. 지느러미부터 몸통 위쪽이 먹물 묻은 것처럼 검정물이 들어있어 먹갈치라 불린다.

목포에서는 요즘 갈치낚시가 한창이다. 목포지방해양수산청은 목포시 허가를 받은 85척의 낚시어선의 갈치낚시 영업을 지난달부터 11월까지 허용했다.

‘목포VIP갈치낚시’를 운영 중인 임귀빈 선장은 “나날이 갈치 씨알이 굵어지는 만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님이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특히 8월 말부터 10월까지는 피크다. 임 선장의 경우도 다음 주 토요일까지 예약이 다 찼다고 한다. 갈치계의 강태공들은 하룻밤 사이에 70~150마리의 갈치를 잡는다고 하니 귀가 솔깃하다.

그러나 초보자들에겐 쉽지만은 않은 게 갈치낚시다. 갈치가 꽤 똑똑해 미끼를 두고 ‘밀당’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 선장은 “갈치는 일반 낚시와 달라서 걷어 올리기가 어렵다”며 “처음 입질이 들어왔을 때 낚시대를 바로 들어올리면 놓치기가 쉽다. 처음에는 갈치가 미끼의 가운데를 먹고 빠지기 때문에 입질이 오기 시작하면 낚시대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미끼를 계속 넣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갈치가 미끼를 계속 먹기 위해 점점 낚시 바늘쪽으로 오고, 그 때 채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임 선장은 “미끼를 잘 넣어주고 줄이 꼬였는지 틈틈이 봐주고 동시에 고패질에 신경을 쓰면 잘 잡힌다”며 “한마디로 부지런하면 된다”고 팁을 줬다.

목포 먹갈치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했다. 임 선장은 “먹갈치는 씨알이 크든 적든 입에 넣으면 녹아버린다. 식으면 퍽퍽해지는 다른 갈치와는 다르다”며 “일단 한 번 먹어본 사람은 잊지 못하고 찾는 게 먹갈치”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찾은 목포시 수강로 ‘신푸른바다횟집’은 임 선장의 ‘먹갈치’ 자부심을 확인시켜줬다.

갈치구이를 시킨 후 20여가지의 기본 반찬이 한 상 가득 놓였다. 각 반찬의 맛이 충실해 눈이 휘둥그레질 동안 ‘타닥’ 하는 소리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갈빛 먹갈치 구이가 나왔다.

▲ 목포 먹갈치 구이. 가장 맛있는 흰쌀밥과의 조합. ⓒ천지일보(뉴스천지)

황홀한 광경을 감상하다 한 점 크게 떼 입에 넣었다. 보통 갈치구이가 짜다고 생각했는데, 크게 짜지도 않고 담백하면서 고소했다. 평소 극단적인 맛에 중독된 기자에게는 맛있으면서도 건강한 느낌이 들어 생소하기까지 하다(이런 맛이 가능하다니). 살이 실하고 뼈가 술술 발린다. 말할 것도 없이 흰밥과는 찰떡궁합이다.

사장님에게 ‘갈치구이’의 비결을 물으니 ‘그냥 구웠다’고 한다. 기본이 되니 괜한 기술을 넣을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투박한 것 같으면서도 홀로 온 여행객에게 ‘맛은 있냐’ ‘필요한 건 없냐’며 신경을 쓰는 사장님과 딸로 보이는 직원의 배려까지 듬뿍 먹었다.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목포 먹갈치의 맛이 입에 맴돈다. 임 선장이 단언했던 그 ‘못 잊는 맛’. 기자에게도 생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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