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난달 28일 전남 장성 한 저수지에서 차량 한 대가 발견됐다. 차량 속에는 모녀가 숨져 있었다. 관심을 덜 가져야 할 죽음은 없지만 이번 죽음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다. 극심한 생활고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민의 생활고는 국가책임이다. 이번 사건이 나고 국가를 대표하는 누군가가 나섰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장성 모녀 자살사건을 보면서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을 떠올렸다. 두 사건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의 경우 자살로 인한 사별이고 장성 모녀 사건의 경우 사실상 이혼한 경우지만 남편이자 아버지 없이 오로지 엄마의 힘으로 가계를 끌고 가야 했다. 월 40∼50만원의 임대료는 감당 불가할 정도로 높다. 어머니 가장이 아프거나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됐다는 점도 닮았다. 어려운 사람과 가정에게 삶의 버팀목으로 기능해야 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높은 칸막이를 설치한 제도의 결함으로 인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는 점도 같다. 삶이 힘겨운 사람들이 의지할 데 없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서울에서 터져서 그런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장성 모녀 사건의 경우 언론에 간단히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 세 모녀 사건의 경우 언론이 주목하니까 정부와 정치권도 주목을 했고 이런저런 해법을 제시하겠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분위기라도 연출됐다. 하지만 장성 모녀 사건의 경우 정부와 정치권의 반응이 아예 없다. 소극적인 언론, 무감각한 정부, 외면하는 정치권이다. 

사람이 죽었으면 왜 죽었는지 살펴야 한다. 사람이 자살했으면 왜 자살했는지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근본 원인을 캐보아야 한다. 똑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죽은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다. 국민이 소리 없이 죽음을 결행하는 마음속에는 “못살겠다!”는 원망이 담겨 있다. 죽음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것도 혼자가 아니고 둘 또는 셋이서 함께 말이다. 그렇게도 힘든 결정을 하는 국민이 늘어나는 것은 한국사회가 중병에 걸렸다는 걸 보여준다. 그에 걸맞는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생명불감증 사회, 이제는 끝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교육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장성 모녀는 등록금 500만원을 백방으로 구했지만 구하지 못하고 등록 마감날 생을 마감했다. 등록금을 해결하지 못해 죽음에 내몰린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다른 건 몰라도 교육비만큼은 무상이나 무상에 가까워야 한다. 모든 계층에 무상교육이 어려우면 기초연금처럼 하위 70%까지라도 적용해야 한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 것은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는 거다. 청년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들어 고단한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건 다른 모든 세대를 위해서도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옳지 않다. 독일이 왜 무상교육을 고집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나라는 GNP 3500달러일 때 대학무상교육을 도입했다.     

장성 모녀 가정 같은 경우는 공공임대주택 또는 사회주택에 입주해서 감당 가능한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안심하고 살 수 있어야 한다. 대학생을 둔 모녀 가정이 월 40만원이 넘는 임대료를 내고 산다는 건 고통 그 자체다. 이 가정은 보증금이 없어 연 500만원의 사글세를 내고 살았다. 주거 불안이 얼마나 심했겠는가? 내년에도 이 돈을 감당해야 하고 또 올려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을 것이다. 보증금을 월세 2개월치만 준비하면 되는 ‘저렴한 공공월세’를 공급해야 한다.  

1999년 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할 당시에 차량은 사치품 취급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차량을 가진 가정은 수급권 대상에서 배제하는 입법을 했다. 그 때도 무리였지만 지금은 더욱 더 말이 안 되는 제도다. 탈수급을 장려하고 권유하면서도 차량조차 보유하지 못하게 하면 탈수급을 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을 박탈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장성 모녀 가정은 소유한 자동차 때문에 수급권신청 대상에서 아예 배제되는 가정이었다. 차량 보유를 이유로 수급대상에서 원천 배제하는 제도를 뜯어 고쳐서 차량이 있는 가정도 어려운 가정은 기초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장성 모녀 가정의 경우처럼 7년을 별거했으면 사실상 이혼상태다. ‘사실이혼’도 이혼으로 인정돼야 한다. 사실상 이혼한 배우자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 장성 모녀 가정은 차량 때문에 아예 배제가 되는 경우이지만 차량을 팔아 버렸다고 할지라도 사실상 이혼 관계에 있는 남편의 존재 때문에 수급자 가정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살림을 감당하는 어머니가 병이 나거나 다쳐서 소득이 없어지게 됐다. 질병·부상급여 제도를 도입하고 실업 급여의 폭을 넓혀야 한다. 

민생고 때문에 자살로 내몰리는 일이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는가? 이 땅에 살아 있는 사람 모두가 공범이다. 죄를 지었으면 반성하고 잘못을 고쳐야 한다. 국민 모두 공범의식을 갖고 ‘더불어 사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성찰하는 마음으로 법과 제도, 의식의 변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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