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중략) /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직녀에게, 문병란)

“이것은 동양에만 있는/ 다리다/ 이것은 동양에만 있는/ 눈물이다// 이것은 동양에만 있는/ 그리움/ 아롱진 사랑이다// 동양의 지혜로/ 가로놓인/ 은하수/ 먼 별들의 다리/ 일 년에 한번/ 만났다 헤어지는 사랑을 위한/ 하늘의 다리// 이것은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만 놓이는/ 동양의 다리다// 그리움이여/ 너와 나의 다리여” (오작교(烏鵲橋), 조병화)

28일은 설화속의 날 칠월 칠석이었다. 견우 직녀 만남은 하늘이 잘 보여주지 않는다. 어릴 적 필자 어머니가 재미삼아 들려준 얘기에 따르면 그렇다. 그래서인가. 올해도 어김없이 밤하늘이 흐렸다. 초가을비, 칠석우(七夕雨)까지 추적추적 내려 오작교 만남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말았다. 견우와 직녀, 애절한 운명의 두 남녀가 주인공이다. 오래 헤어졌다 재회한 둘이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 칠석우라는 말도 있었다. 이처럼 만나지 못하는 이를 그리는 마음을 표현한 작품에 자신을 견우나 직녀로 비유한 내용은 많다.

‘직녀에게’. 통일을 염원하는 한 해직교사 시인의 뜨거운 민족애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시이다. 시는 가수 김원중의 노래로 다시 제작됐다. 그 음반을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차 북한에 갔을 때,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게 기념으로 선물했다고 한다. 남과 북이 서로 갈라져 산 지가 어언 70여 성상. 노둣돌을 놓고 오작교를 놓아서라도 한 민족, 한 핏줄인 남과 북은 만나야 한다. 이번 칠월 칠석에도 남북정상회담 성사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2000년, 2007년 두 차례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이다. 그 때 분위기로는 금세 무슨 통일이라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 불행한 군사충돌만 여러 차례, 얼음장처럼 냉랭한 경색국면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월 4일(추석)이면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제2차 정상회담을 개최한 지 만 10년 되는 날이다. 29일엔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해 북태평양에 낙하했다. 과거 전례처럼 북한인민정권 창건일인 9.9절에 북한핵실험이 또 단행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물 건너간 것인가. 그리고 애타는 그리움 속에 기다려온 남북이산가족들은 올해도 만남을 이루지 못하는가.

역사 속에서는 전쟁 중에도 서로 대화하고 협상했었다는 말은 이제 그만하자. 이번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라도 돌이켜보자. YS와 DJ는 참 묘한 관계였다. 초록은 동색이라던가. 서로 정파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출신지역도 지지기반도 달랐다. 많이 싸웠다. 그러나 많이 만나고, 많이 화해했다. 어찌 보면 정파도 같고 이념도 같은 정치인처럼. 서로 죽일 것처럼 으르렁대던 와중에 양 김(金)의 전격 회동이 이뤄졌다. 취재진이 회담결과를 물으면 “오늘 참 유익했다”며 웃기만 했다. 조건 없는 회동,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는 세상이 달라졌다. 따뜻한 훈풍이 불었고, 실타래처럼 꼬였던 정국이 대동강 얼음 녹듯 술술 풀려나갔다.

김정일 유훈통치를 감안할 때 북한이 쉽게 핵개발을 포기할까. 원유중단과 같은 결정타가 없는 대북제재는 오히려 북핵·미사일기술을 고도화할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 아닌가. 먼저 핵을 폐기하지 않으면 북한과 대화 않는다는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은 현실적인가. 북미 접촉에서는 무슨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은 미군철수와 맞교환해 북한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 북핵 개발로 비대칭전력이 불거진 한국은 전쟁도발 조기경보가 있으면 한두 달 안에 핵무장이 가능할까. 혹시 극적인 반전은 없을까, 고립된 북한이 북미수교, 북일수교 등으로 국제무대에 나올 가능성은 없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통미봉남을 극복하며 남북은 만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조건 없이 만나 북한을 국제무대에 데뷔시켜야 한다. 북핵문제를 넘어 무엇이건 논할 수 있고 우리도 큰 보따리를 풀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야 하고 북한 당국도 남북대화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 활발한 남북경협으로 북한 경제가 글로벌자유경제시스템과 접촉하면 북한이 체제안정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안겨줘야 한다. 남북한 정상회담은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 될 터, 굳이 조건부(條件附)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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