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전국 교육청이 협의체를 만들어 4개 강사 직군의 정규직 전환 공통기준을 마련키로 합의했다.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요구하는 예비교사들의 반발에 교육감들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에서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다. ‘근속 연수기준’으로 전국 1만 3천명에 이르는 스포츠·다문화언어·영어회화 강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전망이다. 강사의 경우 처우·근로조건의 개선 대상이지 정규직 전환 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법이다.

교육공무원법 제10조 2항 ‘교육공무원의 임용은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능력에 따른 균등한 임용의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교육공무원법 제11조 1항 ‘교사의 신규 채용은 공개 전형으로 한다’는 법까지 무시하고 진보교육감들이 대동단결한 모습이다.

기간제 교사는 일단 제외하는 모양새다. 스포츠강사나 영어회화 전문강사도 일정한 기간만 근무하기로 계약한 기간제 교사다. 강사의 정규직화가 성공하면 결국 전체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로 나아갈 게 뻔하다. 기간제 교사는 정원 내 기간제와 정원 외 기간제로 나뉜다. 정원 내 기간제는 휴직, 병가중인 교사를 대신하는 자리다. 정원 외 자리는 신규교사의 임용을 대비해 마련해 놓은 미발령자리다. 정원 외 자리인 신규교사의 자리에 강사나 기간제를 정규직화 할 경우 신규교사 임용은 대폭 줄어든다.

지난 4월 대한민국 체육대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선후보는 교육현장과 동떨어진 공약을 했다. “이 자리에 학교 체육 강사 분들도 많이 오셨죠. 월 130만원 정도 최저생계비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고, 그나마 11개월 비정규직입니다. 확실한 처우개선을 약속드립니다.” 강사 정규직화가 정치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유다. 노량진에서 컵밥을 먹으며 공부하는 예비교사들의 자리를 불법과 편법으로 양도하는 게 처우개선이 아니다.

스포츠강사, 영어전문강사의 시작은 이명박 정부의 청년 실업률 해결 방법으로 졸속 도입한 제도 탓이다. 초등학교 체육수업을 활성화하겠다며 스포츠강사제도를 도입했다. 경기 지도자, 생활체육 지도자 자격증 보유자 또는 체육 교원자격자와 선수생활을 했던 이들을 대상으로 첫해에 800여명을 뽑은 후 2013년 3800명까지 늘어났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2천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고용비용이 많은 드는 원어민 교사의 대치였다. 의사소통중심의 실용영어 교육 강화와 영어수업시수 확대에 따른 보조강사로 3천여명을 뽑았다. 스포츠 강사나 영어회화전문 강사는 교사자격증이 없어도 채용과 근무가 가능하다. 심지어 다른 직업의 겸직도 가능하다. 강사를 정규직화 할 경우 교사자격증 없는 무자격 교사가 학교에 판치게 된다.

강사들이 담당하는 체육, 영어 수업의 성과를 전문기관에서 검증하고 정책의 유지여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 후 임용고시를 통해 교사 자격증 보유자로 충원해야 한다. 대통령의 ‘처우개선’ 공약이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공정한 경쟁까지 파괴하며 정규직 시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교육 수요가 발생하면 장기적으로 사범대학, 교육대학의 커리큘럼을 개선하고 제대로 된 교사를 양성해 현장에 투입해야 한다. 교사 자격증 없는 무자격자를 강사로 고용하고 이를 정규직화 하는 것은 교육을 근시안적 안목이나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다. 불투명하고 검증되지 않은 과정을 통해 선발된 강사를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교사의 역할을 맡기는 건 임용고시 준비생들을 명백하게 역차별 하는 정책이다.

임용고시 준비생들은 수십대:1의 경쟁률을 뚫기 위해 학원가와 고시원에서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대부분의 강사는 임용고시를 거치지 않고 학교별로 간단한 채용 절차를 거쳐 강사가 됐다. 교육학조차 공부하지 않은 강사들을 ‘사회적 약자’라는 대통령 한마디에 정규직화 시킨다면 이전의 제왕적 대통령들하고 다를 바가 없다.

교육에 정치를 개입시키니 자꾸 무리수가 나온다. 공정한 결과를 원하던 대다수 국민들은 허탈감에 등을 돌리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만 대변하던 정권의 한계를 보여준다.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조차 일정과 안건을 비공개로 밀실에서 추진하고 있다. 현행 교사 임용 체제를 뿌리째 흔들고 예비교사와 임용고시생 등 수많은 사람의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초법적 논의가 진행되지 않아야 법치국가다. 누구 하나 죽은 후 멈추면 이미 늦다. 진짜 교육정책이 ‘내로남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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