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우리를 진짜 술 푸게 하는 것들
[문화칼럼] 우리를 진짜 술 푸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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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늘씬한 미녀 스타가 초록색 병을 마구 흔들며 춤을 춘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시선을 빼앗긴다. 화면은 끝없이 이어진다. 화면 속의 그녀는 결코 죽지 않는 좀비처럼 보인다. 어느덧 일상의 풍경이 되어 버린 지하철 그녀들의 모습이다.

섹시 미녀스타들이 대한민국을 ‘술 푸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자랑으로 내세울 것도 많지만 그 반대인 것도 많다. 그 중 하나가 지나친 음주다. 그런데 아름다운 그녀들이 온 몸으로 술을 권하고 있다.

2008년 한 해 동안 우리 국민은 34억 5000만 병(360㎖ 기준)의 소주를 마셨다. 2007년(33억 1950만 병)에 비하면 1억 3000만 병, 2001년(28억 1012만 병)보다는 무려 6억 4000만 병 늘어난 것이다. 1년간 국민 1명꼴로 소주 72병을 마신 셈이다. 술을 마실 수 있는 19세 이상 성인의 경우 93병, 4일에 1병을 마신 꼴이다. 맥주는 더 마셨다. 그 해 마신 맥주는 총 44억 1000만 병(500㎖ 기준). 2007년(41억 921만 병)보다 3억 병 정도(5.2%) 늘었다. 국민 한 사람 당 91병, 성인만 치면 119병이다. 위스키는 한 사람 당 1병이 넘는다. 2009년에는 성인 1인당 맥주는 112.8병, 소주 97.3병, 막걸리 14.6병, 양주 1.5병을 마셨다. 막걸리 열풍이 불었고, 사람들은 막걸리가 보약이라도 되는 듯 앞 다퉈 들이부었다. 한 해 동안 마신 막걸리가 4억 8900만 병(500㎖ 기준)이다. 2008년(3억 5200만 병)에 비해 1억 3700만 병 늘어난 숫자다.

대한민국은 술 잘 마시기로 치면 세계 어디에 내 놔도 손색이 없다. 단연 금메달감이다. 대한민국이 술 공화국이 돼 버린 것은 잘못된 음주문화, 느슨한 법규 등 여러 요인이 있겠다. 그 중에서도 미녀 스타들을 내세운 술 광고도 단단히 한 몫하고 있다. 대로변의 대형 옥외 전광판이나 지하철 역사 내 전광판에는 ‘제발 술 좀 마시라’는 미녀들의 유혹이 끊임없이 뜨고 있다. 알코올 도수 17도 이상 되는 소주 위스키 등은 공중파와 케이블 TV, 라디오 광고를 할 수 없다.

17도 미만인 맥주 와인 등은 오전 7시~오후 10시, 라디오는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광고를 내보낼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허점이 있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방송’은 ‘종합유선방송을 포함한 TV와 라디오 방송’으로 정의돼 있다. 때문에 전광판을 통한 동영상 술 광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1995년 건강증진법이 제정될 때만 해도 지금처럼 전광판 광고가 활성화 될 줄 몰랐던 탓이다.

지하철 등의 전광판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섹시 스타들이다. 모델이 아무리 바뀌어도 섹시 스타라는 점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에스 라인 그녀들이 술병을 마구 흔들어 대며 ‘제발 좀 마셔 주세요’ 하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일제히 넋을 잃고 만다. 무심코 지하철을 기다리던 평범한 그녀들 또한, 아름다운 그녀가 저토록 마시라고 온몸으로 웅변하니 나 또한 마셔 볼까, 하고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솜털 보송한 어린 청소년들이다. 아, 술이라는 게 저렇게 아무 데서나 마시라고 충동질해대도 되는 것이구나, 아름다운 그녀에게 반한 어린 그들은 술마저 아름다운 것이라 여기지나 않을지. 심지어 무면허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 어느 연예인은 단지 섹시 스타란 이유로 술 광고 모델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얘기지요?

지난달 어느 국회의원이 KBS 2TV 개그콘서트 ‘우리를 술 푸게 하는 사회’ 코너에 나온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대사를 문제 삼은 적이 있다. 이 장면도 우리들을 진짜 술 푸게 한다. 우리를 ‘술 푸게’ 하는 것들, 미녀 모델 말고도 참 가지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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