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지난 8월 초순 개봉된 영화 ‘택시운전사’가 화제를 끌고 있다. 입소문을 통해 개봉한 지 19일 만에 천만명 관객 수를 달성한 올해 첫 영화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그보다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서막이 용기 있는 외국인 기자에 의해 전 세계에 처음 알려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혹자들은 영화 속 내용을 두고 실제성을 따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광주의 비극이 발생되는 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암흑사가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교훈과 함께 참언론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한편의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의 얼룩이기도 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태는 당국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신문과 방송을 탈 수 없었고, 다만 진실이 감춰진 채로 권력의 입맛에 맞는 내용들만이 국내 뉴스로 알려졌던 것이다. 그동안 묻어지고 가려진 당시 불법한 내용들에 대해 그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37년이 지난 비극의 과거사가 왜 이제 와서야 한편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화제작이 되고 있는가는 새삼스럽지가 않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군대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이 땅의 민주주의가 훼손당하던 그날의 상황을 제대로 보도해야 했던 국내언론은 봉쇄돼버렸고, 언론인의 손발은 묶여버렸다. 언론은 자유민주주의의 파수꾼으로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무단 권력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해 사회정의를 신장시키는 장치임은 오래전부터 천명된 바다. 그렇다면 광주의 비극이 외국인 기자에 의해 세계에 알려지기 전까지 우리 언론과 언론인들은 무엇을 했는지, 정의롭지 못한 군부 압제 앞에서 언론의 진실 보도가 무너져 내린 것은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칫하면 왜곡되고 더 큰 비극적 상황으로 치달을 뻔했던 광주사태 초기의 일들이 낱낱이 밝혀진 것은 우연이기도 하지만 외국 언론인의 투철한 기자정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당시 참혹했던 광주 현장을 취재해 전 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독일인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는 일본 주재 독일 방송 기자였다. 일본 현지에 근무하면서 당시 한국 군부 사정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서는 그 사실관계를 알리기 위해 광주로 향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그의 취재 현장 자료가 독일로 송고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 기자는 1963년 독일 제1공영방송 일본특파원으로 기자생활을 시작해 도쿄,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 근무한 아시아통이다. 그는 1969년 베트남전쟁 취재 도중 부상당한 적이 있었고, 1986년 서울민주화시위 때 취재 중에 허리를 다치기도 했다. 평소 현장을 뛰면서 ‘언론인이 수집한 자료를 방송으로 내보내지 않고 머릿속에 넣고 다니면 무슨 소용이 있나?’는 투철한 소신을 가졌던 그가 아니었더라면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민주투사들의 값진 노력들이 아마 묻어졌거나, 더 큰 국민의 희생이 따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푸른 눈의 목격자가 취재한 현장 기록들은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로 위대한 업적인 것이다.

본 칼럼에서 새삼스럽게 영화 속의 외국인기자를 언급해 칭송하고 있는 까닭은 살아 있는 언론과 죽은 껍데기 언론을 지적함이다. 시대마다 언론 환경은 다르다하겠으나 사실성, 공정성, 공공성에 기반을 둔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언론 가치는 변함없을 테고, 국가사회가 바르게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언론인의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할 것이다. 그러한 언론관이 분명함에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침묵했던 언론 양상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의구심이 든다.

한국의 언론 환경은 열악하다. 국경없는기자회(RSF)에서 발표한 2017년 언론자유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130개국 중 63위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계속 하락한바, 이 같은 추락은 정도를 걷는 언론에 대한 정부의 탄압과 사익을 위해 정권과 결탁한 일부 언론사의 권언유착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이야 생업에 바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언론통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마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관련 내용들이 철저한 통제로 보도되지 않은 것처럼 속속들이 잘 알 수가 없지만 한국언론의 취약성은 국제사회에서 소문나 있다.

현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야당에서는 “정부가 방송장악에 나서고 있다”며 강력 반발하는 등 언론환경은 뒤숭숭하다. 한국언론이 외국의 웃음거리가 된 지 이미 오래인 현실에서, 또 언론상의 재정립이 시급한 상황에서 천지일보가 오는 9월 1일로 창간 8주년을 맞게 된다. 비록 8주년의 작은 나이테에 불과하지만 그간 본지는 사시(社是)가 지향하는 바대로 정론직필로써 언론의 새 지평을 열어온 점은 위대하다고까지 느껴진다. 지금의 우리 언론환경은 ‘택시운전사’에서 보여준 것처럼 참 언론인의 투철한 사명감에 목말라 있다. 당시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광주로 향한 물음에서 “당연히 가야지, 그게 기자가 하는 일이다”라는 답변처럼 천지일보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국민의 눈길과 마음결이 머무는 곳에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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