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주(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과 교수)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제자가 스승의 은혜를 기리자는 취지에서 정한 날이다. 스승의 날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하고 있으니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날은 아니다. 미국이나 멕시코, 러시아, 싱가포르, 중국 등의 국가에서는 스승의 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있으며,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등은 평일로 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하여 오래 전부터 스승의 은혜가 임금님이나 부모님의 은혜와 다름이 없다고 하는 정신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어진 임금은 왕사(王師)를 모셔 늘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하였고, 부모도 자녀를 가르치는 스승에게는 각별한 존경심을 지니고 있었다. 전쟁과 빈곤으로 인하여 나라가 극도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스승’이나 ‘은사’로 불리던 많은 교육자들이 수많은 인적자원을 길러내 주었기 때문에 부존자원이 별로 없는 국가가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사회질서가 유지되어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니 사회의 전체 분위기가 스승을 섬기고, 그 은혜를 기리는 정신으로 가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스승의 날이 되면 학교에서는 교육주간을 정하여 뜻있는 행사도 하고,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자기가 존경하는 선생님을 찾아보기도 하는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 와서는 촌지와 같은 문제로 스승의 날은 아예 학교 문을 닫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는 교육비리가 심하다고 하여 국가적으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등 오히려 스승의 날의 제정취지가 무색해졌다는 견해도 많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스승이 있는가?’라는 자문을 해 보면 그 답이 군색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벌써 여러 해 전에 있었던 실화이다. 어느 중소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운영위원회가 열렸는데, 학부모 대표로 선출된 운영위원이 그 학교 교사들을 가리켜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고 ‘교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위원들이나 회의를 참관하고 있던 교직원들이 의아해하거나 당황스럽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어느 한 위원이 그 학부모에게 ‘교사님’이라고 하는 호칭보다는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내자 정색을 하면서 자신의 표현을 고칠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그의 의견은 간명했다. 즉 “요즈음에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제자를 가르쳐 평생 인생의 등불이 될 만한 스승이 없다”고 단정하면서, “선생님이란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인격적인 존경심을 담아 부르는 호칭인데, 유감스럽게도 자신은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고”, “교사님이란 ‘교사’라는 직명에 상대방을 높이는 ‘님’자를 붙였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쌤’이라고 하거나 심하면 담임선생님을 ‘담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경제 수준이 높거나 낮거나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정치 사회적인 이념이 전혀 다른 국가에서도 선생님을 존경하는 미풍만큼은 다름이 없는데, 소명의식을 가지고 묵묵히 교단을 지키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 풍토가 점차 약해지는 것을 보면서 국가와 교육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이나 세계적인 위인들은 공통적으로 위대한 스승을 만났고, 또 그 스승을 섬기면서 따라 배웠다. 위대한 스승이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기도 하지만, 스승을 섬기며 배운 사람들이 훌륭한 인재로 육성된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인 말이다.

부모가 무심코 던지는 ‘네 선생이 그러대!’라고 하는 말을 듣고 크는 자녀가 훌륭하게 되길 바란다면 그야말로 언어도단일 것이다.

새로 또 맞이한 스승의 날에 우리들의 소중한 자녀들이 존경하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기려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을 새겨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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