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그들의 말에 춤을 추다간 결코 멀쩡할 수가 없다. 그들은 돌연 우리를 가슴 떨리게 하다가도 이내 마음을 놓게 만들기도 한다. 마음속의 평화와 불안이 그들 말 한마디에 달렸다. 그들의 말은 폭탄이고 전쟁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다 말재주가 비상한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북의 지도자 김정은이 그 사람들이다. 말을 뱉고 뒤집고 하는 기술이 눈부시게 현란한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의 말을 대하듯 흘려듣지 않는다면 정신 건강이 온전할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 정말 불현듯 늑대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입만 열면 그들이 개발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위력을 자랑하며 우리와 미국 일본을 협박한다. 상투적인 허풍이 섞여있긴 하지만 이런 말을 통해 그들이 이루어낸 핵 기술 진보를 우리는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그들은 조용하지 않다. 소란하다. 국제사회가 하지 말라는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만 그들은 일부러 말썽을 일으키는 것 같다. 이 점에서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이나 파키스탄 인도 등이 핵 개발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허허실실의 조용한 행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물론 그들에게 소동을 피울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짐작 못할 것은 없다. 무엇보다 그들은 유래가 없을 만큼 심하게 옥조인다. 더 말할 것 없이 핵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감시와 제재가 전반적으로 더 엄격해진데다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하는 그들의 핵 기술 진보에 맞추어 옥조임 역시 그만큼 더 강화해나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래서 북의 허풍과 협박은 비명일 수도 있고 항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핵 문제의 중요성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북과 국제사회는 목하 팽팽한 샅바싸움 중이다. 바로 그 결과로서 국제사회의 ‘옥조임’이 성공할지 북이 ‘옥조임’의 그물을 벗어나고야 말지 바로 그 싸움, 그것이 절박성과 중요성을 지닌 본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유력한 관측이기도 하지만 북은 이미 그런 ‘옥조임’의 그물을 벗어나버렸다는 소문도 없지 않다. 북의 핵 보유를 저지하는 것이 바로 국제적인 핵 확산을 막는 마지노선(Maginot Line)이라 여겨져 왔는데 말이다.

만약 그 관측대로 마지노선이 뚫렸다면 우리나 국제사회에 최악의 사태다. 특히 우리의 입장은 누구보다도 북의 핵 보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을 수가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북은 짐짓 미국과 싸우는 척지만 거기엔 숨은 노림이 있는 것이지 핵이 겨누는 정(正)과녁은 우리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도 핵 보유와 같은 특단의 선택까지를 심각히 검토해야 하며 언젠가는 이 카드를 빼들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당연한 사활적, 안보 주권적 권리에 속한다. 핵을 막을 효과적인 수단은 핵뿐이라는 것이 정설 아닌가. 그렇다면 만약 결단하고 행동해야 할 때 우리의 당연한 권리 행사인 고고도미사일방어망(THAAD) 배치를 둘러싸고 우물쭈물 하듯이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어떻든 트럼프나 김정은의 설전(舌戰)이 살벌해지는 것은 계속되는 북의 도발과 함께 핵 개발이 거의 막바지 마무리 시점에 도달했음을 반영한다. 그에 따라 우리를 포함한 당사자들 모두가 날카로워지고 민감해졌음을 웅변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북은 천신만고 끝에 다 지어놓은 밥을 그르칠 수 없다는 심산일 것이고 미국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쫓기며 핵 개발을 막아야겠다는 결기를 지니게 됐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북을 규제의 그물에서 놓치면 국제적으로 핵 개발 ‘도미노 사태(domino effect)’가 이는 것을 막기 어렵게 된다. 이는 결코 미국이 원하는 사태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피차 다급한 심정으로 민감해져 있는 마당에 가당치 않게 미국의 태평양 군사거점인 괌(Guam)도를 핵미사일로 포위 공격하겠다고 한 김정은의 도발적 언동은 설상가상, 하마터면 정말 미국의 군사력 행사를 부를 뻔했다. 냉정을 잃지 않고 본다면 말 폭탄인 것이 분명했지만 미국 조야에서 마침 군사적 옵션(military option)을 공개적으로 입에 담는 상황이었기에 두려웠었다. 실제로 괌을 공격했다면 미국은 강대국의 체면상 트럼프의 테이블에 올려져있다는 선제타격이든 예방전쟁이든 어떤 형식으로든 북을 혼내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전쟁이 그들만의 전쟁이었을까? 불문가지(不問可知), 그들의 전쟁이자 우리의 전쟁이었을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블러핑(bluffing)이 섞여도 그들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들의 말싸움에서 정작 전쟁을 벌이려는 의도보다는 고도의 변증법(dialectic)적인 수사(修辭)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인 것 같은 인상을 받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 혹여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이 모두 사실과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우리는 벌써 수십번도 더 전쟁과 평화, 지옥과 천당을 경험했으며 그 사이를 오고갔다 했을 것 아닌가. 좌우지간 그들은 말 폭탄과 말 전쟁의 고수들이다. 그마저도 아니라면 좋겠지만 전쟁을 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깜짝깜짝 놀라더라도 그렇게 말로 치고받는 것이 낫다. 그 같은 말 전쟁만으로 아슬아슬한 고비들을 넘겨가면서 북의 비핵화도 달성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쌍방이 종국에 어느 일점(一點)에 수렴(收斂)되는 동일한 목표를 은연 중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불가능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한쪽은 죽어도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숨기고 있으며 다른 쪽은 기어이 그것을 저지하고야 말겠다는 엇갈리는 비장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물리적 충돌은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외교도 정치이며 전쟁도 정치의 연장이다. 군사력은 실효적인 외교를 뒷받침하는 물리적인 힘이다. 대부분의 경우 외교가 앞장서지만 협상이 파국을 맞으면 결국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이 상례다. 특히 비핵화처럼 기왕지사(旣往之事)나 기정사실(旣定事實)화가 되기 전에 막아야 하는 문제의 경우 외교적 노력의 성공이나 실패와 상관없이 확증적인 해결책으로서 전쟁은 불시에 일어날 수 있다. 사실이 그렇고 지금 형편도 그렇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말싸움의 고수들이긴 하지만 트럼프와 김정은의 말싸움 역시 무한정 갈 수는 없다. 협상으로든 힘으로든 말싸움도 끝내고 비핵화도 끝내야 하며 어떻든 피차 ‘OK 목장의 결투’처럼 최후의 해결을 봐야 할 때가 눈앞에 왔기 때문이다. 이런 때가 위험하다. 따라서 우리는 전쟁은 결단코 없어야 된다고 부르짖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용히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 현명하다. 그러면 정말 불가피한 전쟁도 피해갈지 모른다. ‘망전필위(忘戰必危)’, 전쟁을 잊으면 위기가 오는 법이며 ‘유비무환(有備無患)’, 빈틈없는 준비가 평화를 지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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