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무릇 사람이 사는 이치는 자연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역사 속에 명멸한 숱한 인간 군상들의 삶에도 자연의 이치는 적절하게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의를 따르는 자가 있으면 그 대의를 짓밟으려는 자가 있는 법이다. 고운 자태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지만 그 속에 독을 품고 있는 생명체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한들 열흘 남짓 향기를 뽐낼 뿐이다. 그럼에도 자연은 그 실체가 명료하다. 거짓과 가식이 없기 때문이다. 독버섯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낼 뿐이다.

김소영 대법관의 충격적 발언 

‘후한서(後漢書)’에 전해지는 이야기 가운데 ‘질풍경초(疾風勁草)’라는 말이 있다. 후한의 광무제 유수가 ‘모진 바람이 불면 강한 풀을 알 수 있다’며 명장 왕패의 우직한 충심에 감사했다는 얘기다. 자연의 이치처럼 격동의 시절엔 인간 군상들의 실체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가 정의와 양심 그리고 시대적 소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지, 또 누가 분칠과 덧칠로 시대를 농단하며 위장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자연의 이치는 명료하지만 인간의 실체는 그다지 명료하지 않다는 점이 불행일 따름이다. 그렇다보니 역사 속에는 정의와 양심이 통째로 짓밟힌 인간사의 오물들도 숱하게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모진 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광화문광장을 뜨겁게 달군 ‘촛불혁명’이 있었고 그 힘으로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그 결과물이었다. 그래서일까. ‘모진 바람’ 이후 여러 인간 군상들의 실체를 보여주는 뉴스가 연일 보도 되고 있다. 광주항쟁 때 전투기가 출격을 대기했다는 뉴스도 충격이고 국정원 민간인 댓글부대의 활약상은 충격을 넘어 분노마저 치밀게 한다.

이런 가운데 대법관인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의 발언도 논란이 되고 있다. 사법부 적폐로 지목됐던 ‘판사 블랙리스트’의 진상을 규명해 달라며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오모 판사에 대해 김소영 처장은 충격적인 답변을 했다. 김 처장은 “블랙리스트 재조사를 저희한테 요구하며 단식하는 게 아니라 원래 그 판사가 금식기도를 한다고 한다”며 “금식기도 내용에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 요구도 포함돼 있는 모양”이라고 답변했다.

상식이 있다면 사법부 특히 법원행정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알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 판사들을 어떻게 ‘관리’ 했는지를 밝혀달라며 단식 투쟁을 하는 현직 판사가 누군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판사가 단식투쟁을 하겠는가. 그러나 그 수장인 김 처장은 ‘금식기도’를 하는 것이라며 본질을 회피한 채 조롱하는 식의 발언을 국회에서 쏟아냈다. 상식을 넘어 망발에 가까운 발언이다. 어찌 이런 인격의 소유자가 대법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일까. ‘사법부 적폐’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 때’는 몰랐을 것이다. ‘모진 바람’이 불고 나니 이제야 사람이 보이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부, 더 이상 정의와 양심을 욕되게 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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