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길

백현(1946~  )

 

골목길을 두른 담장이 녹아내릴 듯하다

잡았던 끈을 놓치듯 하루가 간다
어둠의 빛이 당도하기도 전에
손바닥에 배어나는 축축한 시간 끝에서
반짝 가로등이 켜진다
굽은 길 위에 점화되는 작은
불꽃마저 눅눅한 저녁

 

[시평]

저녁은 하루를 마감하는 조용한 눈빛으로 먼 하늘로부터 우리의 곁으로 내려온다. 어둠이 내리기 바로 직전의 그 희뿌연한 빛으로 저녁은 그렇게 우리의 주변을 감싸며 다가온다. 이렇듯 하루가 마감되며 저녁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의 끝자락이 서서히 우리의 곁으로 다가오면, 우리는 우리의 지닌 낮 시간의 일들, 지난 하루의 많고 많았던 일들, 잠시나마 머릿속에 떠올린다. 어둠의 빛이 당도하기 전, 골목 어딘가는 다가오는 어둠을 감당이라도 하려는 듯, ‘반짝’ ‘반짝’ 하고 가로등의 전구들이 점화가 된다. 가로등이 점화가 되는 그 시간. 희뿌연함과 함께 서서히 점령하듯 다가오는 어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의 지난 시간을 잠시나마 떠올린다. 

잡았던 끈을 놓치듯, 지나가버린 우리의 짧았던, 그러나 결코 짧았다고 말할 수 없는 그 하루라는 시간. 그래서 이제 막 점화되는 불꽃마저 눅눅한 빛으로 다가오는 우리의 저녁, 우리의 지난 하루는 구불구불 굽은 길 마냥, 그렇게 우리의 곁을 지나치고만 있지만. 그렇다. 그 하루, 서둘러 지나가는 그 하루의 막막한 꼬리를 우리는 하루의 끝자락에서 바라만 보고 있지만, 허공 위에서 ‘반짝’ 하고 점화되는 가로등 마냥, 잠시나마 우리는 우리의 아쉬웠던 그 하루, 우리는 그렇게 떠올리며 잠시나마 아쉬워하곤 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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