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칠월칠석 오늘 밤은 은하수 오작교에/ 견우직녀 일 년 만에 서로 반겨 만날세라/ … 까치 까치 까막까치 어서 빨리 날아 와서/ 은하수에 다리 놓아 견우직녀 상봉시켜/ 일 년 동안 맛본 설움 만단설화 하게 하소…” 칠석날에 부르는 민요의 일부다.

음력 7월 7일을 칠석(七夕)이라 한다. 이 날은 1년 동안 서로 떨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가 만나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올해는 8월 28일이 칠석이다. 

하늘나라 목동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 직녀가 결혼 후 게으름을 피우자 옥황상제는 크게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 서쪽에 떨어져 살게 했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주었으니 그것이 오작교(烏鵲橋)이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이 되면 이 오작교를 건너 1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진다. 

칠석날 전후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칠석날 저녁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해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라 하고 이튿날 새벽에 비가 내리면 이별의 슬픈 눈물이라고 한다. 

고구려 시대 만들어진 세계적인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1464개의 별자리 가운데 견우성과 직녀성이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다. 한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별자리 북두칠성과도 연관이 깊어 보인다.

비록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라 할지라도 천문도에 이처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별자리가 그려져 있는데 선조들은 왜 칠월칠석 설화를 만들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에 “칠석은 원래 중국의 속절(俗節)로 우리나라에 전래됐고 고려 공민왕 때는 견우직녀성에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조에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과거를 실시했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최근 재야사학계를 중심으로 칠월칠석은 한민족 고유 명절이라는 주장이다. 

조선 중종 때 이맥(李陌)은 ‘태백유사’(太白遺史)에서 “칠월칠석은 나반(那般)이 천하(天河)를 건넌 날이다”라고 했다. 

고려 때 사람 원동중(元董仲)은 ‘삼성기(三聖紀)’에서 “인류 시조는 나반이다. 처음 아만과 만난 곳은 아이사타(아사달)였다”고 했다.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은 아버지 어머니를 말한다. 지금도 함경도 지방에서는 아버지를 ‘아반이’ ‘아바이’, 어머니를 ‘어만이’ ‘오마니’라고 부르는데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칠석날 대표적인 풍속은 걸교(乞巧)다. 처녀들은 반원형의 달떡을 빚어 놓고 베 짜는 솜씨와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었다. 이때 재주를 비는 걸교는 명분이고, 실속은 마음 두고 있는 사람에게 시집가게 해달라는 사랑의 기도였음이 옛 잡가(雜歌)나 속요(俗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칠석날을 연인의 날이라고 한다. 

아울러 옷과 책을 햇볕에 말렸다. 이날 내놓는 옷과 책의 수량에 따라 잘살고 못사는 정도를 알 수 있었다.

칠석의 음식으로는 밀국수와 밀전병이 있다. 이 날이 지나고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밀가루 음식은 밀 냄새가 난다고 하여 꺼린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