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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누정 편] ④배다리 건넌 정조, 왜 ‘용양봉저정’에서 쉬었나
장수경 기자  |  jsk21@newscj.com
2017.08.24 08: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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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은 누각과 정자의 합친 말이다.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는 자연 속에서 여러 명이 또는 혼자서 풍류를 즐기며 정신수양을 하던 건축물이다. 옛 선비들은 마음의 여유를 느끼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누정을 찾았다. 이곳에 담긴 선조들의 삶을 알아보자.

 

   
▲ 용양봉저정 내부 ⓒ천지일보(뉴스천지)

노량진에 가설된 배다리 건너
휴식 취하고 점심식사 하던 곳
준공 시 부속 건물 갖췄었지만
지금은 정자 한 채만 홀로 남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울 동작구에는 정조(조선 제22대 왕)때 지어진 정자 하나가 있다.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이다. 한강이 멀리 보이는 곳에 위치한 용양봉저정.

이 정자는 정조 때 배다리를 건너는 전후에 휴식하던 주정소(왕이 능행 중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던 곳)이다. 용양봉저정은 현재 서울시유형문화재 6호로 지정돼 있다.

◆가설된 배다리 건넌 후 머물던 곳

정조는 효심이 지극해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수원 화산(華山)의 현륭원(顯隆園)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노들강(지금의 한강)에 배다리를 가설해 건넜는데, 시간이 걸렸으므로 잠시 어가(御駕:임금이 타는 수레나 가마)를 머물게 하고 쉴 자리가 필요해 이 정자를 지었다 한다. 축조연대는 1789년(정조 13) 이후로 보고 있다.

‘용양봉저정기’에는 1789년(정조 13) 망해정을 구입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이후 다시 지은 것인지, 이름만 용양봉저정으로 바꾸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정조는 이곳에서 주위를 살펴본 후 “북쪽의 우뚝한 산과 흘러드는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굼틀굼틀하고 봉이 나는 것 같아 억만년 가는 국가의 기반을 의미하는 듯하다”하여 용양봉저정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이며 내부는 마루와 온돌방으로 꾸몄다. 당시 주변에는 배다리를 관장하던 관아건물이 몇 채 있었으나 모두 없어졌고, 이 정자도 한때는 음식점으로 쓰일 정도로 훼손됐다.

   
▲ 노량주교도섭도에 그려진 용양봉저정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림, 실록 속에 기록된 옛 모습

용양봉저정의 옛 모습은 그림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화성능행 중 가장 장엄했던 을묘능행(1795)을 담은 정조능행도 8폭 병풍 중 ‘노량주교도섭도’ 상단에는 용양봉저정이 담겨 있다.

지금은 정자 한 채만 남아 있지만, 1791년 준공 당시 상당한 부속 건물을 갖춘 규모있는 행궁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버들이 늘어서 있고 도진촌(渡津村)이 들어앉은 노들나루(노량진)의 전경과 하얀 꽃이 만발한 동산, 그리고 강변에 정조의 행차를 구경나온 군중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조가 용양봉저정에서 점심을 먹었던 내용이 기록돼 있다. 기록에 따르면, 1795년 2월 9일 정조는 창덕궁을 떠나 돈화문에서 혜경궁(어머니)을 맞아 말을 타고 출발했다. 그 뒤를 채제공을 비롯해 1700여명이 따라갔다. 노량진에 가설된 배다리를 건너 노량행궁(용양봉저정)에서 점심을 먹은 뒤, 시흥 행궁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서둘러 화성으로 향했다.

2월 12일 아버지 묘소인 현륭원 원상에 올라 참배하고, 2월 15일 귀환길에 오른다. 2월 16일 시흥을 떠난 정조는 용양봉저정에서 점심을 먹고 배다리를 건 너 환궁했다.

   
▲ 용양봉저정 외부ⓒ천지일보(뉴스천지)

◆“문화재 잘 관리해 후손에게 전해야”

낮은 언덕 위에 있는 용양봉저정. 주위에 차들이 많이 다니지만 관심을 두지 않으면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있었다. 실제로 이곳에 사는 주민들도 용양봉저정의 존재를 늦게 발견했다고 했다.

용양봉저정을 찾은 김미주씨(43, 여)는 “주변에 사는 데, 어떤 곳인가 궁금해서 와봤다”라며 “정조 임금이 배다리를 건너 휴식을 취했던 곳인데도 그동안 관심을 갖지 못해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어 “홍보가 더 잘 돼서 많은 사람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용양봉저정에 대한 관리는 제법 꼼꼼해 보였다. 현재 4조 3교대(하루 8시간) 근무를 통해 10분마다 점검을 하고 있던 것.

박준석 문화재 관리인은 “오래된 문화재일수록 화재나, 훼손 등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라며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 많은 문화재가 파괴돼 현재 남은 것을 잘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에서도 문화재 관리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우리 역사가 담겨 있기에 후손에게 잘 전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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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
마정수
2017-08-24 09:46:53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삭제하기 신고하기
맞습니다 정조는 효심이 지극했다고 하
맞습니다 정조는 효심이 지극했다고 하더군요. 어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성군이 되었다고 말이죠
전체기사의견 보러가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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