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가 신앙의 절개를 지킨 목회자로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 독립운동가로도 존경하고 있는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일사각오’ 스틸컷. (제공: 파이오니아21)

신사참배 거부, 항일운동의 삶…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독립운동가 선정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신앙을 지킨 순교자 고(故) 주기철 목사(1897∼1944)가 오는 25일 연세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이날 연세대 학위 수여식에서는 주기철 목사의 손자 주원(흥국증권 대표)씨가 유족을 대표해 명예졸업장을 받을 예정이다.

23일 연세대에 따르면 주기철 목사는 1916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 상학과에 진학했다. 몸이 약했던 그는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교회 집사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독립운동가로, 또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의 길을 걸었다.

주 목사는 1938년 전국 장로회 총회가 일제의 강요와 탄압에 굴복해 신사참배를 결정하자 이에 대항해 ‘일사각오(一死覺悟)’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면서 신사참배 거부를 호소했다. 설교 제목인 ‘일사각오’는 KBS 다큐멘터리와 영화로 만들어져 관심을 받은 바 있다.

그는 광복을 1년여를 앞두고 감옥에서 순교했다. 정부는 주 목사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국가보훈처는 2007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소양 주기철 목사의 생애

“나는 내 주님 밖에 다른 신 앞에서 무릎 꿇고 도저히 살 수 없습니다. 더럽게 사는 것보다 죽고 또 죽어 주님을 향한 나의 정절을 지키려 합니다. 주님을 따라서 가는 죽음은 나의 소원입니다. 다만 나에게는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주기철 목사의 마지막 설교 중)”

주기철은 한말 대한제국이 출범한 해 늦가을인 1897년 11월 25일 경남 창원군 웅천면 북부리(현 진해시 웅천 1동)에서 태어났다. 주기철 목사의 호는 ‘예수의 어린 양’이라는 뜻의 ‘소양(蘇洋)’이며, 원래 이름은 주기복(福)이었다. 그는 오산학교에서 세례를 받은 후 ‘기독교를 철저히 신앙한다’는 의미로 이름을 바꿨다.

그는 1916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4월 신설학교로서 아직 총독부의 설립인가도 나지 않은 서울의 조선예수교대학교(연희전문학교의 전신) 상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채 1년도 다니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어린 시절부터 앓았던 ‘안질’이 이유였다.

고향으로 내려온 주기철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듬해 12월에는 경상남도 창원 웅천청년운동단의 대표로 조선청년연합회 창립총회에 참석했고 의사(議事)로 선출되기도 했다.

1920년 9월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가 찾아왔다. 마산 문창교회에서 열린 김익두 목사 부흥회에서 ‘중생의 체험’을 한 것이다. 김익두 목사는 두 달 후인 11월 1일 그가 다니던 웅천교회에도 초청돼 사경회를 인도했다. 그 때 주기철은 기독교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목사가 되려면 소속 노회의 시취(試取, 시험을 보아 인재를 뽑음)를 거쳐 노회의 추천을 받아 평양에 있는 장로회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마쳐야 했다. 그는 이듬해인 1921년 12월 문창교회에서 열린 제12회 경남노회에서 ‘신학청원’을 해 허락을 받고, 입학시험을 거쳐 1922년 3월 봄학기부터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평양의 장로회신학교는 졸업생이 305명, 재학생이 461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신학교였다.

그는 1925년 목사 안수를 받고 1936년 장로교의 본산인 평양 산정현교회의 목사로 부임했다. 이후 일제의 혹독한 탄압과 핍박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1938년 2월 조선총독부가 기독교에 대한 지도 대책을 수립,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그해 9월 전국 장로회 총회가 이에 굴복하자 ‘일사각오’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고 신사참배 거부를 교도들에게 호소했다.

이 일로 일경에 체포돼 가혹한 고문과 감시를 받았으나 가석방된 후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설교를 계속해 1940년 7월 불경죄 및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또다시 체포됐다. 주기철 목사는 1944년 4월 21일 49세의 일기로 일본의 옥중에서 순교했다.

한국 개신교계는 주 목사의 정신과 사상을 기리기 위해 기념관을 2015년 개관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로 174에 자리잡은 주기철목사기념관은 4506m² 부지에 건축연면적 1098m²의 2층 규모로,1층에는 전시실과 영상실이,2층에는 기획전시실이 갖춰졌으며,주 목사가 생전에 썼던 각종 유품·사진·항일운동 내역 등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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