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슈퍼 돼지를 소재로 순수한 사랑과 우정을 그린 영화 ‘옥자’가 영화계의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근육이 일반 돼지보다 1.5배 많은 돼지가 복제된 바도 있다. 생명체의 유전물질인 DNA를 자르고 붙이고 교정하는 유전자가위 기술은 우리나라가 선두 주자다. 그러나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는 임상연구실적은 초라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미국 임상등록사이트에 등록된 유전자가위 임상연구는 미국(9건), 중국(5건), 영국(3건) 등으로 우리는 한 건도 없다.

최근 난치·불치에 대한 도전으로 급성장이 기대되는 재생의료분야에서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와 상용화는 지난 18년 동안 치료제 임상연구 건수가 세계 2위였지만 지난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최근 발간한 ‘글로벌 줄기세포 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줄기세포 치료제의 신규 임상시험에서 미국이 23건이다. 중국도 2014년 우리를 따라잡은 데 이어 2015년에는 1건 앞서 역전됐다. 작년에는 중국 8건으로 5건인 우리와 차이가 더 커졌다.

우리나라는 바이오·제약 분야의 법적 규제로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나가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줄기세포·유전자기술은 희귀 난치병을 해결할 수 있는 신기술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각종 규제와 인식 부족 탓에 미국·중국·일본 등 경쟁국에 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산하 국민인수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들의 정책 제안을 받는 홈페이지인 광화문 1번가를 통해 접수된 정책 제안 중 줄기세포와 유전자를 키워드로 한 의견은 약 120건으로 바이오 분야의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을 확대하자는 내용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치열한 상용화 경쟁을 하고 있는 재생의료 산업 연구는 황우석·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일본은 2012년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줄기세포 연구로 노벨상을 받으면서 줄기세포 최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2014년 11월 의약품 관련 법률을 개정해 줄기세포 치료제의 경우 초기(1~2상) 임상시험이 끝나고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사용 승인 허가를 먼저 해주고 치료 과정을 보면서 부작용 여부를 감시·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사용 시기를 1~3년 앞당기고 개발 비용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2015년 생명과학 기초 연구부터 산업화까지를 총괄하는 ‘일본 의료연구 개발기구’를 출범시켰다. 현재 전 세계 줄기세포 치료제 회사들이 일본으로 집결하고 있다.

미국은 2016년 말에 국민보건 향상을 위해 ‘21세기 치유법’을 제정해 생물의학 분야의 고위험, 고부가가치 연구지원 및 체계적 전략 수립을 통해 제품의 개발에서 승인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EU도 첨단제품의 연구 및 신속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인·허가제도가 2017년 3월부터 도입예정이여서 줄기세포 치료제 시장은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사실 의약품 신속 허가 방식은 2010년대 초 우리나라가 먼저 입안한 법이나 줄기세포 포함여부 논쟁을 벌이다 법안이 사장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차세대 미래 산업 발굴에 뛰어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중 의료산업의 중심에는 줄기세포와 유전자기술이 부상하고 있다. 또한 사물인터넷(IoT), 빅테이터, 인공지능 등이 의료 및 바이오산업과 융합하면서 의학계의 산업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고 일자리 창출, 생산성 향상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기대수명의 증가로 의료비 지출이 증가되고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성장성이 매우 높다. 공공 및 민간 부분의 R&D 투자 확대와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체계 구축과 규제정비가 조속히 돼야 할 것이다. 업계는 “지난해 법을 개정한 후 희귀질환, 중증질환의 경우 유전자치료제 연구를 허용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를 희귀질환, 중증질환으로 봐야 할지 아직까지도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재생의료 산업 육성을 위해 산업경쟁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허가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줄기세포·유전자, 잘만하면 우리나라가 IT 다음으로 세계 1등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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