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봉 대중문화평론가

영화 ‘장산범(연출 허정)’은 스릴러라기보다 민담을 또 다른 시선으로 해석한 한국형 소리 공포물이다. 소리와 가족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감성이 더해진 공포물이다.

영화 제목의 장산범에서 장산은 부산 해운대의 산이고, 범은 포유류 식육목 고양이과 동물이다. 장산범은 장산에 사는 범인데 세상을 떠난, 사랑했거나 믿었던 이의 목소리를 흉내 내 산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다는 전설의 악귀를 의미한다.

장산 산골 마을의 음침한 동굴. 서울에서 이곳으로 오게 된 희연(염정아)의 가족은 동굴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 걸 알게 되고, 갑자기 나타난 소녀는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애잔한 대상이자 점차 섬뜩한 존재로 다가온다.

장산범이 타 공포영화와 차별적인 부문은 바로 소리일 것이다. 적대자인 괴수는 사랑했거나 잃어버린 존재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영화의 절반 이상은 어두컴컴한 동굴과 숲속에서 벌어지며 극한의 공포를 주기 위해 거울과 빛의 명암을 분명히 한 미장센을 유지했다.

장산범의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인물의 감정을 보다 극대화시키며 공간과 소리가 주는 두려움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무언가 애타게 갈망하지만 마음의 한구석에는 항상 미안함과 죄책감에 대한 멍에가 씌어진 희연은 공포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성애라는 타이틀로 뜨거운 감정선을 계속 유지한다.

장산범은 누구를 놀라게 하기 위한 공포보다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공포감에 휩싸이는 상황설정이 관객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클라이막스 동굴씬에서는 사람에게 민감한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자극하고 기하학적 영상효과를 배합시키며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장산범에 대한 공포를 그려낸다. 장산범은 희연이 가장 신뢰하는 상대방의 목소리를 이용해 희연을 파괴하려 든다.

소리를 흉내 내고 홀린다는 재미있는 설정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과 겹치며 심리적 불안감을 배가시킨다. 사람들은 이해력 밖에서 엄습해오는 운명의 힘 앞에서 커다란 위축감과 심리적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장산범은 공포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상처와 아픔으로 인해 방향 설정이 흐려진 희연의 미묘한 감정을 터치하며 섬세한 연출을 보였다. 또한 괴수의 캐릭터를 한가지로 픽스한 게 아니라 여자아이와 남성으로 다각적으로 표현하며 관객들의 기대를 높였다.

장산범은 공포장르에 아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그려내는 모성애, 가족의 가치 등을 혼합시키며 기존 공포물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소리로 더욱 아픔을 건드리며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한계를 괴담과 연결해 공포를 덧입힌다. 동굴이라는 신비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장소를 통해 인간이 가진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을 다양한 사운드와 조화시켰으며, 아련함과 공포가 어우러지며 미묘하고 고독한 영상을 이어갔다. 기존의 공포물이 단순하고 획일화된 느낌이 대체적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자식에 대한 지독한 허기짐을 표출하며 애절하고 고독하고 필사적이다.

다만 공포를 표현하는 시각효과나 레벨은 할리우드와는 다소 차이를 보이며, 인위적인 느낌이 많고 진부하고 다채롭지 못하다. 무당의 굿장면과 악마의 영혼이 덧씌운 모습들은 곡성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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