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드레이스 파이닝거가 촬영한 데니스 스톡의 초상. ⓒ천지일보(뉴스천지)

포토매거진 ‘라이프’ 130여점 전시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사진 한 장이 가진 힘은 대단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매개체로 어떤 사람에게는 역사의 기록을 남기는 기록물로 사용된다.

일찍이 사진의 중요성을 알아챈 헨리 루스(Henry Luce)는 주간지 ‘타임’과 경제지 ‘포춘’을 창간해 잡지왕이 됐다. 이후 오래된 잡지 하나를 인수한다. 바로 ‘라이프’지다. 헨리 루스는 “인생을 보기 위해, 세상을 보기 위해(To see Life, To see the World)”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파격적인 기획을 실행한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일깨우고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글은 줄이고 사진을 늘렸다. ‘라이프’는 ‘포토스토리(Photo Story)’라는 독특한 방식을 도입했는데, 이는 하나의 주제를 여러 장의 사진으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이다. 포토스토리를 통해 인간과 세상의 이야기, 인간의 딜레마, 도전, 고통을 담아냈다. 이것은 세상을 이미지의 시대로 인도한 전환점이 됐다.

이처럼 ‘라이프’지는 역사와 함께 길을 걸었다. 함께 뛰었던 로버트 카파, 유진 스미스, 필립 할스만,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 마가렛 버크 화이트 등 당대 최고의 사진가들은 역사의 증인이 됐다.

▲ 경교장 집무실에서포즈를 취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1946). (제공: 제이콘 컴퍼니)

역사의 목격자인 ‘라이프’의 기록을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다. 오는 지난달 7일부터 10월 8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라이프 사진전’이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1956년 이래 지난 60년간 열린 4번째 사진전이다. 주최 측은 그동안 국내 전시에서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중심으로 130여점을 엄선했다.

전시된 작품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현장부터 평범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차별과 투쟁했던 시민운동의 현장, 광기의 시대에 스러져간 민족의 영웅들, 미지의 세계로의 본능이 끌어낸 우주탐사, 낭만적인 시대를 살아갔던 스포츠맨과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모습들은 지난 세기의 역동성을 생생히 전한다.

처음 관람객을 맞는 것은 20세기 영웅들의 얼굴이다. 먼저 눈에 들어온 사진은 카메라를 세로로 잡고 찍은 안드레이스 파이닝거가 촬영한 데니스 스톡의 초상이다. 라이프 사진전 포스터 속 사진이기도 한 해당 작품은 사진작가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표현한다. 카메라의 렌즈와 뷰파인더가 사진가 데니스 스톡의 눈을 대신하고 있다.

해단 섹션에는 경교장 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의 사진도 있다. 1946년에 촬영된 사진 속 김구 선생은 사진기자의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외에도 마틴 루터킹 목사, 마하트마 간디, 장 폴 사르트르(노벨상 거부), 존 레논(영국 여왕 훈장 거부), 마론 브란도(아카데미상 거부) 등을 만날 수 있다.

▲ 낙원으로 가는 길 ⓒ천지일보(뉴스천지)

전시의 두번째 섹션은 ‘시대’다. 미국판 세월호 사건인 안드레아 도리아호 사건, 인종 차별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물대포로 흑인들을 무차별로 진압하는 백인 경찰들의 모습은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한국과 관련된 사진이다. 1960년대 최초로 미국에 진출했던 걸그룹 김시스터즈의 무대 위와 평범한 일상을 볼 수 있다. 또 통일과 휴전사이에서 고뇌하는 이승만 대통령, 역사 교과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 축하식 날의 풍경 등도 관람 포인트다.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번째 섹션은 우리의 오늘을 만들어 준 도전과 혁신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라이프’지 최초 흑인 사진기자인 고든 파크스는 “사진은 차별과 싸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라고 말했다. 그는 사진을 통해 강렬하고 용기 있게 흑인의 현실을 보여줬다. 그의 사진 ‘Right’에는 미국 국기 앞에서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자 청소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랜트 우드의 그림 ‘아메리칸 고딕’을 재해석한 것이다.

▲ 시민들이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라이프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마지막 세션에선 ‘아름다운 20세기’를 이야기한다. 전쟁에서 입은 상처로 고통스러운 생활을 이어가던 유진 스미스는 2년이란 시간동안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다시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던 1946년 어느 날 두 자녀와 산책하러 나갔다. 아이들은 숲속에 있는 작은 것들에도 행복해했고 그 순간 유진 스미스는 전쟁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을 잊고 삶을 살아가는 용기를 갖고 싶었다.

카메라를 들 기운조차 없었지만 빛을 향해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빛을 향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전쟁이라는 어둠을 지나 해방으로 가는 희망찬 미래를 의미한다. 이후 그의 사진은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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