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날이 갈수록 청년 취업의 문이 좁아지고 있다. 급기야 교대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임용 절벽 반발 시위에 나서는가 하면 국공립 사범대생들도 정부정책에 불만을 터트리는 현실이 됐다. 그것은 하나같이 취업 전선이 불안정하고 대학졸업 후에도 상당기간 무직자 신세가 우려되는 현실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사 의무발령제가 있던 때만 해도 교대나 사범대학을 나오면 졸업과 동시에 교사로 취업됐으니 그때와 비교하면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아닐 수 없는데, 원인을 따지고 보면 학령 아동수의 감소가 직접 영향이지만 정부의 안이한 정책도 큰 원인이다.

전국 초등학교 학생수와 교사수 추이를 살펴보면 정책 실패가 뚜렷하다. 지난 2010년 학생수가 329만 9000여명일 때 교사수는 17만 6700여명이었다. 2016년에는 학생수가 267만 2800여명으로 62만 6200여명 줄어들었으나 교사 수는 오히려 6700여명이 증가됐으니 이것만 봐도 교육부의 교사 수급 정책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한 부실한 기초 위에서 재단된 교육정책이 맞을 리 없다. 올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선발(또는 선발예정)된 인원은 지난해 5549명보다 40%나 줄은 2228명이고, 내년에는 더 줄어들 예상이니 교대 재학생이나 당장 임용시험에 합격하고 발령받지 못한 예비교사들이 좌불안석인 것이다.

일부 교대 졸업생 등 임용대기자들이 교사 자리가 생겨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수가 없어  공공무문 취업의 길을 두드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올해 하반기에 공무원 증원계획을 내놓자 취준생들은 평생직장이 보장되는 공무원을 꿈꾸면서 공무원 학원가로 몰리고 있다. 소위 ‘잠재적 공시생(공무원·공공기관 시험 준비생)’들로 ‘공시 열풍’은 거세게 불고 있다. 그로 인해 서울 노량진 공무원학원은 수험생들의 발길로 만원 상태고, 강남쪽 유명학원도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하니 가뜩이나 높은 경쟁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지금이다. 비례하여 공무원이란 직업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기세이니 좋은 현상만은 아니다.

통계청 자료(2017년 3월 발표)에 따르면 취업준비생의 39.4%가 ‘공시생’이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취준생 네 명 중 한 명 꼴로 정부(지자체 포함)·공공기관 등에서 일하기를 원했는데, 그 사이에 공시생이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 등 생산현장에서 일하겠다는 구직자들은 줄어들었다. 청년들이 공공부문 취업을 원하는 것은 급여·복지후생뿐만 아니라 재직 기간, 시간적 할애 등을 종합 고려한 것이라 하니 물론 잘 되도록 바라는 마음이야 누구든 같다. 하지만 공무원시험은 자격시험이 아니라 선발 인원이 한정돼 있으니 매년 합격자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런 실정이니 준비기간 동안 취준생들이 겪는 정신적·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청년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은 현실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공무원 증원 정책에다가, 또 안정된 직장을 바라는 젊은 인재들에게 현실이 돼버린 ‘공시 열풍’시대.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무직 청년 40%가 ‘잠재적 공시생’이 된 한국의 현실에 대해 비관하고 있다. 그들의 일관되고 공통된 관심사는 한국사회가 발전되기 위해서는 다원화된 산업군 육성을 전제로 하는 기업의 창조적 활동이 활발해야 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젊은이들이 공시에만 매달리기보다 자유와 창의적 직업군(群)으로 눈을 뜨라는 권유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떠오르는 경영 거두가 있다. 미국 로저스홀딩스의 짐 로저스(75) 회장이다. 지난달 말일 사업적인 일로 우리나라에 와서 금융시장과 창업센터 그리고 노량진 공무원학원가 등을 살펴본 로저스 회장은 한국의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아 개별 기업 직접투자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 청년 창업에 규제가 많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말 가운데서 특히 가슴에 울리는 말이 하나 있다. “중국 러시아 등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10대들의 꿈이 공무원인 곳은 없다”는 말이다. 한국의 현실이 만들어낸 공시 광풍을 비관한 것이다.

인구가 줄어들고 가계빚이 늘어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젊은이 모두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로저스 회장은 화두를 던졌다. 이 말은 100만명 넘는 취준생들이 달리 방도가 없어 공시족이 됐지만 이러한 사회현상은 바람직한 청년 고용정책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정부, 경제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성장동력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 창의롭고 다원화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고견이 담겨져 있다.

로저스 회장의 한국청년 일자리 방향성에 대한 고견은 일리가 있다. 지금 사회현상처럼 청년실업자가 늘어나고 있고, 그 가운데 대부분이 공무원을 희망하는 현실에서는 밝은 미래가 담보될 수 없음을 시사해준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공무원 증원 정책도 임시로 ‘빼먹은 곶감’ 격인 바, 젊은이의 장대한 꿈을 단지 공무원에 머무르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라 미래를 위해 동량재들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줄 것인지에 대해 우리 세대가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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