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훈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

 

규모의 경제는 상업세계에서는 바로 경쟁력이 된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누릴 수 있는 가격조건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모가 없으면 해당 수준의 가격을 제시할 수 없고 가격 면에서 밀리면 선택을 받을 수 없으니 사업의 영위면에서는 꽤 중요하다. 해운산업에서는 운임이 상당히 중요하다. 작은 배로 화물을 옮기는 것보다 큰 배로 옮기면 한번에 더 많은 짐을 싣고 이동할 수 있으니 작은 배보다 단가를 낮게 책정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화주들은 더 낮은 단가를 적용해 주는 큰 배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작년 해운산업이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컨테이너 전용선박이 80% 이상이었던 우리 해운업계가 큰 상처를 입었다. 급기야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운임을 견디지 못해 국내 1위의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을 맞이했다. 보통은 이 정도의 규모를 가진 해운사의 파산을 맞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나라가 파산이 아닌 합병이나 지원을 유도해 기간산업의 안정성을 유지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를 방관했고 덕분에 외국선사들은 앉아서 고객확보를 했다. 해운업의 경우 화주들은 고정 거래처를 두고 이용해 화주 확보가 쉽지 않은데 한진의 파산으로 화주들이 노선을 바꿨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경쟁적으로 대형선박의 확보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 100만TEU  이상의 선박이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업과 해운업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판도가 달라졌다. 우선적으로 한진해운이 무너진 이후 딜레마에 빠졌다. 조선업에서도 대형선박의 수주를 중국으로 빼앗겼다. 조선도 해운도 문제는 중장기 전망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계 선사들이 선복량을 늘리며 M&A로 규모를 키우고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여러 제재에 묶여 규모의 확대를 하지 못했다. 또한 세계시장을 보지 못한 채 국내 경쟁력 싸움에 좌충우돌하면서 남의 일처럼 대표 해운사의 몰락을 지켜보기만 했다. 기간산업의 경우 나라의 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외국의 경우 국책은행이 낮은 이자를 사용하게 해 큰 배를 발주할 수 있게 하고 이러한 정부지원이 큰 힘이 되어 M&A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준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러한 트렌드를 읽지 못한 것인지 방관한 것인지 산업의 지지기반이 되어 주지 못했다. 세계는 상위 5위의 선사들이 71%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운영될 만큼 규모가 지배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우리도 세계 4위에 있었지만 이제 세계 5위에도 끼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규모가 되지 못하는 기업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규모를 이루려면 그만큼의 능력이 필요한데 일개 회사가 그러한 능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 국내 1위의 현대상선 혼자 세계를 상대로 그만한 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때문에 업계에서는 인수합병이 진행됐고 정부의 지원이 힘이 돼 주었던 것이다.

정부는 우리 산업과 기업들이 이러한 일들을 자주 겪지 않으려면 눈앞에 불이 아닌 중장기의 비전을 보아야 한다. 1990년도가 기점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당시 우리가 겪어 냈던 외환위기였다. IMF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국내 여건은 제치고 과도하게 그들의 요구에 휘둘려서 기업과 국민들이 그리고 산업이 내상을 크게 입었다. 그때 정부가 중장기 안목에서 대처를 했더라면 작금의 판도와는 다른 산업체계와 규모를 가지고 글로벌 시장에 서 있었을 것이다. 때를 놓치면 그만큼 궤도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다. 과거와 달리 변화와 속도가 기술의 속도가 다르기에 망설임이, 뒤처짐이 예사롭지 않다. 정책 역시 이슈에만 휘둘리지 말고 온전한 체계의 발전을 위한 전문성과 안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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