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마케도니아 영웅 알렉산더는 장병들을 무척 사랑했다. 전쟁에서는 부하들을 앞세우지 않고 선두에 서서 싸웠다. 부하들과 찬바람을 맞으며 노숙하거나 고락을 같이했다. 알렉산더가 그리스, 로마를 장악하고 페르시아를 거쳐 머나먼 인도까지 점령한 것은 병사들의 충성스런 사기에 힘입은 것이었다.

동양에서 명장을 꼽으라면 전국시대 병법가 오기(吳起)다. 그는 위(衛)나라 장군이었는데 전쟁 중에 한 병사가 종기를 앓아 고통이 심했다. 오기는 무릎을 꿇고 그 종기를 입으로 빨아 고름을 제거해 주었다. 감동한 병사는 장군을 위해 용감히 싸우다 전사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제일 존경하는 황제는 당태종이다. 태종은 연호를 정관(貞觀)이라고 했다. 그가 만든 통치 지침서 정관정요(貞觀政要)는 지금도 치도(治道)의 요체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당태종의 부하사랑은 남달랐다. 고구려 안시성을 공략할 당시의 고사다. 전쟁 중 계절은 10월로 접어들었다. 만주대륙의 날씨는 겨울이 일찍 찾아왔으므로 기온이 급강하 하고 진눈개비가 내렸다.

당태종은 퇴각을 명령했다. 기록에는 추위와 배고픔에 떠는 어린 병사들이 애처로워 후퇴를 결심했다고 돼 있다. 그러나 퇴각하는 길은 치욕적이었으며 고통이었다. 땅이 진흙 수렁으로 변해 황제가 탄 마차가 늪에 빠지기도 했다. 군사들은 마차를 건지느라 안간힘을 썼다.

태종은 마차에서 내려 황금갑옷을 걷어 부치고 병사들과 함께 밀었다. 황제의 옷과 얼굴은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병사들은 황제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태종의 리더십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됐다.

몽골제국의 영웅 징기스칸은 무자비한 성품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인정이 많았다. 그는 부족과 부하들에게 인의를 베푼 의장(義將)이다. 그의 아내 ‘빌데’는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를 데려다 키운 인자한 국모였다.

징기스칸이 젊은 시절 약혼자가 다른 부족에 납치돼 1년간을 억류당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약혼자는 적국 우두머리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약혼자에게 냉담했지만 마음을 돌려 약혼자와 아이를 거두었다. 그가 숱한 이민족을 지배하며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제국을 건설한 힘의 배경엔 이런 관용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일상에서 매우 엄격했다. 군법을 어기거나 명령을 지키지 않은 부하들은 참수하여 본보기를 삼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따뜻하고 인정 많은 덕장(德璋)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하들이 쉬는 시간에는 막걸리도 같이 마시고 피리소리를 듣기도 했다.

어느 해 역병이 돌아 부하들이 목숨을 잃었다. 충무공은 이들을 양지 바른 곳에 묻고 제향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충무공전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 죽은 군졸을 위한 제문… 윗사람을 따르고 상관을 섬겨 너희들은 직책을 다하였지만/ 부하들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일 나는 그런 덕이 모자랐노라/ 그대 혼들을 한자리에 부르노니 여기에 차린 제물 받으시라(祭 死亡軍卒文… 親上事長 爾盡其職 投醪吮疽 我乏其德 招魂同榻 設奠共享) -

최근 국가안보가 위급한 상황에서 육군 대장부인의 갑질 문제가 불거졌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상심이 큰 것 같다. 도대체 지금이 어느 때인데 공관병제도가 있으며 군인들을 하인처럼 부리는 ‘사모님’ 풍조가 존재하는가. 이 같은 사례가 비단 문제가 된 대장의 공관에서만 이루어진 것인가.

장군도 야전에서는 사병과 함께 배낭을 메야 한다. 병사들과 함께 구보도 같이하며 커피도 손수 따라 마셔야 한다. 그래야 멋진 장군이고 존경 받는 리더십이다.

사병의 종기를 손수 빨아주었던 오기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부하를 형제, 자식처럼 사랑할 때 군의 사기는 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북한의 핵 위협과 미국의 강경한 대치 등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시기, 지금 우리대한민국은 군의 사기가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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