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물질을 잘라내고 나누기를 무한정 되풀이 할 때 종국에는 더 잘라낼 수도 나눌 수도 없는 상태에 도달한다. 그 상태가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Atom)’다. 기원전 5, 4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등 원자론자들이 주장한 원자의 정의이며 그리스 철학의 원자론(atomism)이다. 그들 원자론자들은 오늘날의 것과 같은 가공할 원자폭탄을 만들자고 원자론을 연구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원자론은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오늘날의 원자폭탄 제조에 쓰인 현대 물리학 이론의 시원(始原)인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벌써 원자론은 물질의 근원을 찾는 인류 조상 선각(先覺)들의 관심을 끌었다. 

놀랍게도 그들의 연구 업적은 현대 물리학자들의 첨단 이론과 별반 어긋나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전자현미경이나 물질을 잘게 부수고 잘라낼 과학적인 기구나 도구 또는 실험 수단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감각과 지각, 심안(心眼)과 혜안, 사변(思辨)과 논리적 추론을 동원해 그런 업적을 이루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더욱 놀랍다. 그들은 그때 몰랐겠지만 그들의 연구 성과는 이미 현대적 실증(實證) 원자 이론에 근접해 있었다는 것이 물리학자들의 평가이기도 하다. 다만 오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원자를 나눌 수 없다고 본 것, 바로 그것이 명백한 오류였다. 원자 ‘Atom’은 ‘uncuttable(不可削)’이나 ‘indivisible(不可分)’의 뜻을 지닌 그리스어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어의(語意)로 보아서도 그들의 원자론과 일치한다. 하지만 원자는 더 말할 것 없이 분열(fission)하거나 융합(fusion)함으로써 엄청난 에너지를 낸다는 것이 후일에 밝혀졌다. 그것이 파괴적으로 쓰일 때 원자폭탄이 되고 수소폭탄이 되는 것이다. 잔소리에 불과하지만 원자폭탄은 핵분열을 이용한 것이며 수소폭탄은 핵융합을 이용한 무기로서 원자폭탄보다도 그 위력이 더 무섭다. 

급기야 1945년 8월 6일, 미국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원자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져 무지막지한 살상력과 파괴력을 입증한다.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 등이 원자론을 들고 나온 지 대략 2400~2500여년쯤 지난 시점이다. 미군 폭격기로 나른 그 폭탄의 이름은 유약하게 들릴 것이 틀림없는 ‘리틀 보이(Little Boy)’였다. 그 유약한 ‘작은 소년’의 펀치력이 자그마치 TNT 2만톤 규모의 무시무시한 폭발력이었다. 폭탄은 히로시마 상공에서 번쩍하는 섬광을 내며 터졌다. 혹여 그것을 바라본다면 눈을 멀게 할 만한 밝은 빛이었다. 그 단 한 방에 일본군 2만여명을 포함한 20만여명이 목숨을 잃었거나 다쳤다. 순식간이었다. 도시는 황폐화되어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미군이 노린 일본군 제2 사령부와 수많은 병영 및 무기 공장, 각종 병참시설들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래도 일본은 손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미군은 사흘 후인 8월 9일 결정타로서 나가사키에 원폭 한 방을 더 떨어뜨렸다. 다름 아닌 ‘팻 맨(Fat Man)’, 이름은 비록 ‘뚱뚱한 사람’이지만 폭발력은 ‘리틀 보이’와 비슷했다. 살상력과 파괴력도 마찬가지였다. 안타깝기 이를 데 없는 것은 이들 원폭에 일제에 의해 끌려간 조선인 징용자 4만여명도 피해를 입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같이 원자폭탄 두 발에 일제는 며칠 뒤인 8월 15일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일제가 1941년 12월 하와이 진주만 미 해군기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로써 우리에게도 ‘광복(光復)’이 찾아왔다. 이 날이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그들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날로부터 헤아린다면 무려 40여년 만에 일제의 식민사슬에서 풀린 날이다. 광복절 노래가 말하는 대로 이 날은 ‘바닷물도 춤을 추는 날’일 뿐 아니라 ‘40년 뜨거운 피가 엉킨 자취’의 날임이 자명하다. 그런데 하늘의 천사가 아니라 이처럼 무시무시한 원자폭탄이 ‘해방(解放)’과 ‘광복’을 가져다준 것은 아이러니(irony)하다. 그런 역설만큼이나 이 날은 우리에게 기쁜 날이자 동시에 슬픈 날이기도 하다. ‘광복’의 날임과 동시에 ‘분단’의 날이다. 이것 역시 아이러니다. 우리 강토를 나누어 차지하려는 미 소 두 강대국들의 막후의 분단 음모가 현실화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 역사적 사연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대충 이렇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폭을 떨어뜨려 일제의 패망이 확실해 보이자 그때까지 참전을 꺼리던 소련이 그 이틀 후인 8월 8일 돌연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다. 그러고선 바로 그 다음날 0시 소련은 보병 포병 기계화 부대 공군 등 총 150만여 병력을 동원 소만(蘇滿) 국경 전역을 돌파해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이 항복한 8월 15일 이후에는 미국과 비밀 합의한 한반도 38이북 지역을 손에 넣어 그곳에 소련군이 들끓게 되었다. 하지 중장이 지휘하는 미군도 인천항을 통해 상륙 38이남 지역을 장악하게 된다. 두 진영은 몇 차례 한반도 장래를 결정하기 위한 협상을 시도했으나 북(北)을 위성국화하기로 야욕을 굳힌 소련에 의해 번번이 결렬돼 끝내 성공을 거둘 수가 없었다. 결국 남과 북은 분열되고 그나마 1950년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의 공동 음모에 의한 남침 전쟁으로 분단은 고착화된 채 지금에 이르렀다. 동족상잔의 그 남침전쟁은 처참했다. 

여하튼 오늘날의 원폭 수폭은 우리에게 해방과 광복을 가져다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에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그때의 원폭은 유치한 장난감 수준이었다. 그것도 무섭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핵보유국들이 비축하고 있는 핵무기는 지구상 모든 인구를 10번 죽이고도 남을 수준이라 한다. 이렇게 무서운 무기이기 때문에 핵 강국들이 ‘공포의 균형’을 이루어 도리어 자잘한 전쟁은 몰라도 핵전쟁이 될 만한 큰 전쟁(大戰)은 피하게 돼 불안한 평화가 길게 지속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걱정거리는 뒤늦게 기어이 핵과 그 운반수단인 ICBM을 가지려 하는 야심을 불태우며 핵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그들 영토인 괌(Guam)을 포위 타격하겠다고 협박하는 김정은이다. 이판사판인 것은 알지만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지 겨우 걸음마 하는 핵 능력으로 어쩌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는 항상 전쟁과 평화의 임계점(臨界点)에서 불안해하는 것 같다. 필경(畢竟)에는 구세주로 여기는 핵을 안고 자폭할지도 모른다. 그 재앙이 우리에게도 미치므로 불안하다. 그렇기에 그의 핵 놀음에 데모크리토스를 탓하는 것은 부질없지만 우리 운명의 운전대만은 우리가 움켜잡는 것이 중요하고 시급하다. 결단코 그의 손에 그 운전대가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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