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이 한마디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선 역사적으로 너무도 명확한 이 사실마저 우리는 왜 그토록 소모적인 논란을 반복했을까. 그리고 정치적으로 수구세력은 왜 줄기차게 1948년 이승만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명명하며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항일투쟁사를 그토록 주변화 시켰던 것일까. 건국 100주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이 발언이 많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감동을 주는 것 자체가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통한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일의 기억, 역사에서 지우기

사실 따지고 보면 1919년의 임시정부도 당시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단일 정부가 아니었다. 게다가 항일독립운동을 벌이던 곳곳의 애국독립투사들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한 것도 아니었다. 크고 작은 단체들을 만들어 중국 만주와 연해주, 심지어 러시아 영토에서도 치열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은 정부 형태를 갖춘 최대의 통합정부였으며 불완전하지만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었으며 우리 역사의 연속성까지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후 독립한 대한민국에서 초대 정부를 구성할 때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그 기반으로 했던 것도 이런 배경이었다. 이승만 대통령도 1948년의 대한민국을 건국이 아니라 ‘정부수립’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1948년 9월 1일의 대한민국 관보 1호의 날짜도 ‘대한민국 30년’이었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 대한민국 건국이었으며 이승만 정부는 그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분단과 한국전쟁,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정권과 기득권 세력의 입맛에 따라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줄기차게 시도됐으며 ‘1948년 건국론’ 주장은 그 상징이었다. 다시 말하면 정권과 기득권 세력은 과거 그들의 ‘친일 역사’를 지워버리고 독재권력과 그 부역자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1948년 건국론’은 그들의 입맛에 딱 맞는 논리로 압축된 셈이다. 졸지에 ‘건국의 공로자’가 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근대화의 주역’으로 그들의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논란의 핵심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양심적 학자들의 비난과 국민적 저항으로 인해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이러한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구악과 적폐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이런 즈음에 ‘피플 파워’로 등장한 문재인 대통령의 ‘건국 100주년’, 그 한마디가 얼마나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이제야 ‘나라다운 나라’가 제 모습을 갖춰갈 것인가. 사회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적폐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다면 비극의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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