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리 홀트 이사장이 아버지의 일대기가 담겨 있는 책을 보여주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홀트아동복지회 말리홀트 이사장 인터뷰
“행복한 가정은 아이들이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

[천지일보=김두나, 전형민, 김지윤 기자] 지난 15일. 기자가 말리 홀트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홀트일산복지타운 언덕에 자리 잡은 ‘말리의 집’을 찾아간 날은 마침 스승의 날이었다. 미국에서 건너 온 해외입양아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던 홀트 이사장은 기자를 보고 “어서 오세요”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따뜻한 주말 오후, 이웃집 할머니같은 평상복 차림에 연둣빛 미소를 머금은 그녀를 만났다.

2000년부터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말리 홀트(75) 씨는 홀트복지회 창립자인 아버지 故 해리 홀트 씨의 셋째 딸이다. 1956년 당시 미국에서 간호대학을 다니던 21살의 말리 홀트 이사장은 아버지의 부름으로 머나먼 한국 땅을 밟았고, 그 때부터 반세기 동안 불우한 아이들과 삶을 함께 보내고 있다.

‘백내장 수술을 했다고 하던데 건강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녀는 “다른 아픈 곳도 없고 건강한데 살이 쪄서 고민”이라면서 “머리도 하얘서 이젠 정말 할머니 같다”며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건넸다.

Q: 하루 일과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항상 하는 일이 달라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운동하고 7시 정도에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같이 먹죠. 아이들 아침밥은 대부분 제가 먹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하고 샤워하고 나면 9시 정도 되요. 이후에는 보육사 선생님들과 1주일에 한 번씩 복지회 소속 아이들의 건강상태 등을 체크하고 복지회의 휠체어나 장비 등 여러 문제들을 원장님과 상의하는 평가클리닉도 합니다.

Q: 입양되지 않은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나요?

입양이 되지 않아 여기서 자라서 사회로 나간 원생들을 퇴소원생이라고 하는데 그들 대부분은 자기들끼리 결혼해서 애기도 낳고 잘 키우고 삽니다. 그들에게는 금전적인 문제 외에는 어려운 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장애인이고 고아라서 도움을 받을 곳이 없어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퇴소 기준은 따로 없고 본인이 사회에 나가서 살고 싶다는 의사가 있으면 퇴소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영세민 아파트 등 정부 지원책이 그나마 나아져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자녀들 교육비도 정부에서 지원해줘서 자녀 3명을 대학에 보낸 퇴소원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과 결혼했을 때는 차별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아라고, 돈이 없다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이곳은 퇴소원생들에게는 친정집이나 다름없습니다. 안 좋은 일이 있거나 아기를 낳아 산후조리를 할 때도 여기 와서 도움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본인들이 노력을 더 많이 합니다. 그런 모습이 저는 참 고맙습니다.

Q: 아동복지회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는지요.

장애아동들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왜냐면 입양까지 걸리는 기간도 길어 오래 함께하기 때문이죠. 장애아를 맡아서 돌봐주던 위탁모들도 장애아가 입양되면 기뻐하면서도 더 잘해주지 못해 아쉬워합니다.

▲ 환하게 웃고 있는 말리 홀트 이사장 ⓒ천지일보(뉴스천지)

Q: 국내 입양과 해외 입양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1950년대 한국이 어렵게 살 때에는 장애아들이 많이 입양됐습니다. 언청이・소아마비・뇌성마비 등 한국에서 치료가 어려운 장애를 앓는 아동들이 해외로 입양돼서 치료받기도 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동이 살아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지금이야 한국도 의료기술이 많이 발달했지만 40~50년 전에는 장애아동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1958년 부산지역의 영아원에서 일할 당시 한 달 동안 시청에서 영아원으로 데려오는 아이들이 10명이라면, 죽어나가는 아이들도 10명이었으니까요… 물론 그 때 당시에도 국내 입양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려운 한국의 형편을 생각하면 해외 입양은 창피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고마운 일입니다. 한국 부모들은 장애아를 낳으면 천벌 받았다고 생각해서 집에서 그냥 키우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Q: 일을 할 때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는지

*입양쿼터제 때문에 입양 되지 못하고 시설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해외입양이 가능한 경우에는 해외로 쉽게 보낼 수 있도록 쿼터제 기준을 너무 까다롭게 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3년 전 어느 젊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올해 안에 *헤이그협약에 가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가입을 하지 않아 해외입양에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입양을 하고 나면 서류정리나 입양아가 부모를 찾는 일, 한국에 왔을 때 홈스테이 연결 등 사후관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부차원에서 지원하는 사후관리는 아무 것도 없는 실정입니다. 또 미혼모가 낳은 아이의 경우 생후 5개월이 지나야 해외입양을 보낼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아이가 낯을 가리기 시작해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미혼모가 친권과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 되도록 빨리 입양을 보내야 양부모와 아이에게 둘 다 좋습니다.

Q: 앞으로의 꿈이나 희망이 있으시다면

가족이 필요한 아이들이 모두 다 따뜻한 가족을 찾을 수 있으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재단 소유로 된 땅이 조금 있는데 도시계획에 편입돼 사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 땅에 퇴소원생과 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양을 창피해하는 나라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한국에서는 입양을 하면 입양비도 주고 한 달에 10만 원씩 지원도 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가 자기 국민들에게 돈까지 주면서 입양하라고 하겠습니까? 게다가 해외 쿼터제 등으로 억지로 해외 입양을 낮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체면보다 중요한 것 아이들의 생명이고 행복해질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입양쿼터제는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2007년부터 실시한 것으로 해외입양아 수를 해마다 10%씩 줄이는 제도다. 그러나 쿼터제 도입 후 4년간 입양아수는 25% 감소했다.

*헤이그 협약은 부당한 국제 입양을 막기 위해 1993년 체결됐다. 현재까지 78개국이 가입했으며 17만 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됐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가입 보류 상태다.
이 협약에는 “아동이 출생가족과 출산국의 보호 하에 머무를 수 있도록 국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해외 입양은 그 것이 불가능할 경우에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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