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5·18민주묘지 ⓒ천지일보(뉴스천지)

국립5·18민주묘지를 찾는 사람들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우리 모두 일어나서 계엄군과 끝까지 싸웁시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겁니다. 우리는 광주를 지키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영화 <화려한 휴가> 대사 中)

1980년 5월 17일 24시를 시작으로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져 정치활동 중지 및 대학 휴교령이 공포된다.

18일 오전 10시 학교에 주둔하고 있는 7공수부대와 마주한 전남대 학생들은 ‘계엄 해제’와 ‘휴교령 철폐’를 외치게 되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공수부대원들은 곤봉을 휘두르고 학생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지게 된다.

이 일이 80년 5월 광주를 민주화로 불태우게 만든 5·18광주항쟁의 시발점이 된다.

국립5·18묘지를 찾는 발길들

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총 10일간의 항쟁, 그 속에 눈물과 아픔, 분노와 투쟁은 무엇보다 광주라는 공동체 속에서 공감대 형성이 절정으로 치솟았기에 가능했다.

당시 시민군과 일반인 등 희생자는 2천여 명으로 추산되며 현재 국립5·18민주묘지에는 621명의 희생자의 유해가 안치돼있다.

항쟁 때 불태운 민주화의 불꽃은 광주와 전국 각지에 퍼져 광주 망월동을 민주성지로 여겼으며, 매년 5월에는 그들을 위한 추모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저마다 가슴 속 사연을 안고 묘지를 찾는 참배객들은 오월의 뜨거운 태양아래 묵묵히 민주영령들의 넋만 기릴 뿐이다.

5월 18일 기념일 전후로는 경찰청장과 광주지방보훈청, 광주시장 등의 정치인과 시민·사회 단체 등이 희생영령의 추모를 위해 망월동을 찾았다. 또 전북과 경상도 일대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참배객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 광고공고 학생회단이 지난 14일 학교를 대표해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희생영령들을 추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지난 14일 망월동에는 광주권내 위치한 초·중·고등학교 학생대표단도 추모물결에 동참했다.

광주공고 학생회단 11명은 인솔교사 2명과 함께 묘역을 찾아 5·18기념재단에서 운영하는 ‘오월지기’의 설명을 통해 5·18의 역사와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광주공고 윤영대 학생회장은 “어릴적부터 참배하러 오던 곳이지만 5·18에 대한 막연함이 있었는데, 오늘 희생자 각각의 사연과 함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며 “나와 상관없는 사람, 상관없는 역사가 아닌 매우 근접해 있는 역사라는 의미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전주신흥고등학교는 이번 현장학습 첫 답사지를 망월동으로 선택했다.

김세환(전주 신흥고 2년) 군은 “현장학습 장소를 국립5·18민주묘지로 희망하는 학생들이 다함께 오게됐다”며 “현장에서 직접 오월지기의 설명을 들으며 묘지를 참배할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김 군은 망월동 답사를 통해 직접 보고 느낀 점을 담담하게 말했다.

“안타까운 역사 속에 희생당한 분들이기에 아직까지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희생자를 위한 민주묘지가 세워지고 운영된다는 것에 마음이 편합니다. 이제 이분들의 희생과 역사를 잊지 않고 계승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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