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어떤 질병도 안심하고 치료받게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던진 화두다.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야심적인 의료복지정책인 ‘문재인케어’는 30조 6천억원이 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다. 문 대통령은 1조 8천억이 넘게 드는 ‘국가치매책임제’도 발표했다. 그간 보험 적용이 안 돼 환자가 부담해온 비급여 항목을 정부가 보장하고 지원해줌으로써 저소득층의 병원비 걱정이 깨끗이 씻겨질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환자·노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따뜻이 대해주는 간병인. 순박한 심성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 듣는 재중동포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몰상식하고 돈벌이에 급급한 무자격 중국 출신 간병인과의 마찰 및 불통(不通)에 따른 고충민원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Y씨는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중인 80대 할머니. 병원비 외에 월 70여만원을 간병비로 지출하는 그는 2년 전 척추수술을 받았다. 예후가 좋지 않아 혼자 걷기조차 힘들며 척추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진 상태다. 허리·팔·다리에 통증이 심한 날에는 진통제에 의존해야 한다. 초기치매에다 전신마취 후의 섬망(譫妄)까지 겹쳐 망상에 시달리는 날도 있다. Y씨는 지난주 어느 새벽에 잠을 깼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 때문이었다. 통증과 함께 왼쪽 어깨와 팔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간병인을 불렀다. 그는 “몸이 아프고 싸늘하게 얼어붙고 있으니 간호사나 의사 선생님을 좀 불러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때마침 곤히 잠자고 있던 조선족 간병인은 의료진을 불러달라는 Y씨의 간절한 요청을 퉁명스레 거절했다. 간병인 대답은 “의사 선생님이 아직 출근하지도 않았다”며 “당신은 맨날 아프다고 하는 그 부위를 이유로 이른 새벽에 왜 사람을 오라 가라 시키느냐”는 것. 간병인은 환자가 의사를 부른 것이지 간호사를 불러달라고 한 게 아니어서 간호사실에 달려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듣고 보니 문제점이 하나둘 아니다. 우선, 언어소통 문제와 한·중문화의 차이다. 환자가 의사이건, 간호사이건 의료진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는데 간병인은 이를 일방적인 판단으로 무시해버린 것이다. 주치의가 아니라도 당직의사에게 문의할 수 있다. 간병인이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하니 간병 의무 불이행이다. 이는 교육·감독·관리 부족 탓이기도 하고, 24시간 근무제의 맹점 때문이기도 하다. 친절·불친절 여부는 고사하고 쏟아지는 잠을 어쩌란 말인가. Y씨는 역시 중국인인 다른 간병인 여성이 대리근무를 와 그를 침대 윗쪽으로 밀어올리며 발을 뻗어 사용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괴롭히던 허리통증이 극심하게 악화돼 한동안 고생하기도 했다. ‘간병잔혹사’라는 말이 있다. 치매·중증장애인에 대한 과실치사·유기 등 상식을 벗어난 일탈행위가 일부 몰지각한 중국인 간병인들에 의해 빚어진다는 얘기다. 대부분 요양보호사자격증이 없다. 중환자 간병인으로서의 봉사마인드와 지식 부족은 물론,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않는다.

‘경력단절여성(경단녀)’ 등 한국의 가정주부들이 간병인 업무를 꺼린다. 하고 싶어도 못한다. 교대 없고 살인적인 24시간 근무시스템 탓이다. 병원 간호사 근무처럼 3교대, 2교대 근무로 바꾸고 급여 처우를 최저임금 이상으로 개선해 취업을 유도해보자. 종합병원 등에서 시범실시중인 간호·간병통합시스템도 취지는 좋다. 그러나 늘어나는 고령환자에 비해 간호사 숫자가 턱없이 모자라 비현실적이다. 종합병원 요양병원 등에서 의료진의 치료를 받아야 할 치매·중증장애노인 중 상당수가 일반 요양원에 내맡겨져 있다. 다름 아닌 간병비 부담 때문이다. “병원비가 병보다 무섭다. 간병비는 병원비보다 더 무섭다”는 속설이 있다. 환자의 간병파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현재 비급여인 간병비에 건강보험이 확대적용돼야 한다. 국부(國富) 유출도 심각하다. 일용직인 간병인은 정확한 전체 수효를 파악하기 어렵다. 대략 경기도는 3천여명의 중국인 간병인이 308곳의 요양병원에서 일한다. 전국적으로는 그 열 배가 훨씬 넘는다. 전체 간병인 숫자를 어림잡아 3만명으로, 이들이 각각 5인실을 담당한다고 추정해보자. 그렇다면 한 해 우리나라 간병비가 얼마나 되는가. 1인당 간병비를 월 60만원으로 계상할 때 한 해 최소한 1조원 이상의 어마어마한 현금이 중국으로 빠져나간다.

중국 출신 간병인들의 무성의와 환자위험 극복, 그리고 경제활성화를 위해 제언한다. 노인 간병이 보다 전문화되고 교육·관리·감독상의 구멍이 한시바삐 메워져야 한다. 요양보호사교육을 마친 가정주부, 자격을 취득한 한국여성 등에게 간호·간병 업무를 맡기되 근무여건은 ‘확’ 개선돼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으로 고학력 경단녀에게도 수준급 재취업기회가 제공되면 일자리창출로 노동과 봉사의 기쁨이 주어지고 가정경제와 소비진작에도 기여하게 될 터. 일석삼조(一石三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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