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종교 총본사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대종교 환국(還國) 제71주기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이숙화 한국외대 강사가 ‘환국 직전의 대종교-임오교변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대종교 환국 71주기 학술회의… 일제강점기 대종교 역사 재조명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민족종교 대종교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옥고를 치르던 독립운동가들의 국내 귀환 71주년을 맞아 그들의 삶을 조명했다.

대종교 총본사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대종교 환국(還國) 제71주기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홍수철 총전교를 비롯한 김영두 종무원장, 박우균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도천수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공동대표, 일본 동경(도쿄) 국평사 주지 윤벽암스님, 대종교 신도 등이 참석했다.

홍수철 총전교는 개회사에서 “8.15 광복 이후 환국한 대종교는 나라의 정체성을 전파하면서 겨레의 정신적 지주 역할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한 축을 이루었다”며 “이 자리에서 대종교 환국의 배경과 현대사적 의의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통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선 대종교 주요 인사들의 역사적 평가가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홍수철 총전교가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발제에 나선 이숙화 한국외대 강사는 ‘환국 직전의 대종교-임오교변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를 들고 나와 대종교의 독립운동사를 깊이 있게 다뤘다. 임오교변은 1942년 11월 19일 만주 영안현 동경성에서 일본경찰이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사건을 날조해 교주·간부들을 검거한 사건이다.

이 강사는 “1930년대 초 대종교 제3대 교주 윤세복은 만주(국)에서 포교 활동을 시작으로 교단을 재정비했다. 대종교는 교세가 커진 후에도 친일활동이 없었다”며 “대종교는 표면적으로 일제의 식민지 국가였던 만주국 정부의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이면에 한글과 역사교육, 개천절 의례를 통해 민족문화의 보존, 신사건립에 반하는 단군 천전의 건립 등으로 황민화에 대응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대종교의 활동은 표면상 종교활동이었지만 실제로는 민족정신의 혼을 되살리고자 했던 민족운동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황민화의 기만을 무력화시킨 단군신앙은 전시체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일제는 ‘국수망이도가존(나라는 비록 망했으나 정신은 가히 존재한다)’이라는 대종교의 정신을 무력으로 탄압하고자 했다”면서 “만주국의 일제는 통치기간 내내 대종교의 정신과 대종교인들을 식민체제에 굴복시키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강사는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일으킨 임오교변은 일제의 입장에서는 한국인의 신체적 구속은 가능했지만 민족정신만은 굴복시키지 못한 패배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이 밖에도 정영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대종교와 한국 근현대사’를, 고병철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해방 후 대종교의 환국과 교단 재건’을, 박용규 고려대 연구교수가 ‘환국 대종교 인물들의 활동’을, 최윤수 대종교 삼일원장이 ‘대종교 환국의 종교적 의의’ 등의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대종교는 독립운동가인 홍암 나철(1863~1916) 대종사가 1909년 중광(重光)한 민족종교다.

▲ 대종교 총본사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대종교 환국(還國) 제71주기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