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미국의 전 CIA국장은 최근 북한의 괌 공격 엄포 등을 1960년대 쿠바의 미사일 위기 같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 당시 대결의 주체는 세계 초강대국인 소련과 미국의 대결이었다. 쿠바의 카리브해는 잠시 그 그라운드를 제공하려 했을 뿐이다. 오늘 김정은의 미국 협박은 그야말로 하룻강아지가 호랑이를 협박하는 양상이다. 북한의 반미사상은 곧 체제결속과 확대재생산의 주요 원천이다. 김일성은 6.25 남침전쟁으로 70년 지배의 근간을 마련했고, 김정일은 1976년 8.18 판문점 도끼사건으로 역시 자신의 후계구도를 탄탄하게 만들었다. 오늘 김정은의 괌 타격과 같은 협박으로 평양시는 8.18 도끼사건의 악몽으로 돌아가고 있다. 김정은은 은근히 레드라인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북한을 때릴까.’ 요즘 가장 많이 유행하는 질문이다. 독자분들도 속 시원한 답을 듣고 싶을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서로 말로만 물어뜯는 건지, 진짜 미사일도 쏘고 전투기로 폭격도 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는 건지…. 정답은 트럼프, 김정은 두 사람만 알겠지만, 좀 더 쉬운 문제부터 풀다 보면 답을 추리할 수 있을 듯하다. 오로지 미국만 생각한다는 트럼프는 후보 때부터 동맹을 깔고 뭉갰다. 대통령 자리에 앉고 나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요즘에야 동맹을 지켜주겠다고 한다. 한국은 미국이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멤버도 아니다. 정보가 북한에 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반신반의의 우방이다. 장사꾼 DNA가 있는 트럼프라면 필요하면 손잡고, 걸림돌이 되면 버릴 수 있는 게 바로 한국이다.

트럼프만 이기적인 것도 아니다. 1950년 1월 ‘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도 그랬다. 한국과 대만을 아시아 방위선에서 제외해 놓고는 “태평양의 다른 지역은 누구도 군사 공격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게 분명해야 한다”며 ‘외교적 모호성’마저 피해 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라 살림이 쪼들린 미국이 보호 가치가 떨어진 한국을 가차 없이 버린 결과가 6.25전쟁이었다.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은 국제사회의 반대를 딛고 1964년 핵 개발에 성공했다. 그 힘은 1979년 미중 수교의 토대가 됐다. 김정은이 모델로 삼는 방식이다. 대화로 북핵을 막는 게 늦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어제는 ‘체제 보장’을 약속했다가, 오늘은 ‘정권 종말’을 말하는 미국을 북한이 믿을 리 없다.

내년이면 미국 본토를 때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실전 배치된다는 게 미국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중국의 압박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이제 미신이 돼가고 있다. 결국 트럼프는 대북 군사공격으로 핵개발을 막거나, 핵을 인정하고 ‘체제 보장’ 방식으로 자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 중 하나를 선택받게 될 수 있다. 김정은과 평화협정을 맺으면 주한미군 주둔 명분이 사라진다. 철수하면 태평양 방어선이 일본까지 밀린다. 지금처럼 미일 밀월 관계가 계속된다는 보장도 없다. 2009년 민주당 집권 때 미일 관계는 과거 노무현 정부의 한미 관계처럼 삐걱댔다. 태평양에서 중국에 밀리지 않기 위해 한미일 삼각안보동맹이 유지돼야 하는 이유다. 한국을 잃는 것, 트럼프에겐 엄청난 실(失)이다.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트럼프에게 두려운 건 ‘북핵을 인정하면서 한국을 잃고, 태평양 패권에서 중국에 밀리는 상황’일 것이다. 그걸 막으려면 북한을 때려서라도 핵 개발을 멈추게 해야 한다. 트럼프가 “전쟁이 나면 미국이 아니라 한반도가 될 것”이라고 한 건 한국 국민을 버림으로써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북한이 ‘8월 괌 타격’ 운운하는 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이다. 트럼프는 10일 “괌을 건드리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일이 북한에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선중앙TV를 통해 “괌을 때리겠다”고 공언한 북한도 밀릴 수 없는 처지다. 결국 8월엔 한반도에 정말 위기가 올 수도 있다. 한미연합사 체제에서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하긴 어렵지만, 트럼프의 지시만 있으면 B-1B 전략폭격기가 북한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김정은이 진짜 괌을 때리는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화성-12호가 괌 근처 상공에서 미군의 사드공격과 이지스함의 반격으로부터 두 동강 나 바다에 뿌려진다면 김정은이 지금껏 쌓아온 핵강국 슬로건도 함께 조각나 뿌려지게 되는 것이다. 어린 지도자 김정은의 모험은 멈출 때가 됐다. 더 앞서가면 그는 불나방이 불에 다가가는 꼴이 될 것이다. 마침 중국이 김정은에게 ‘경고’했다. 마치 마오쩌둥이 한국전쟁에서 너무 앞서가는 김일성에게 경고했듯이….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