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꿈은 자연에 동화되어 사는 것이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하나같이 자연과 잘 어울린다. 나무를 깎고, 자르고, 붙여 만든 정자요 사찰인데 산과 숲 사이에 원래 있었던 것인 마냥 시치미를 뚝 떼고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산세·지세·수세 등 자연의 형세를 이용해 국운이나 사람의 팔자에 이롭도록 터를 잡아온 선조들이지만, 오히려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이는 선조들이 때론 자연을 스승 삼고 때론 벗 삼아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풍류를 즐기며 시 읊기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닐까.
연분홍과 연둣빛이 주는 5월의 풍경을 감상만 하고 끝내기엔 선인들이 주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본지는 특별기획 ‘한국의 역사여행-관동팔경’ 두 번째 편으로 양양 낙산사와 고성 청간정, 그리고 그 일대 봄의 운치를 선인의 발자취와 함께 담아봤다.


고성(高城)
아름다운 화진포서 한낱 권력의 일장춘몽을 깨닫다

[천지일보=박미혜 기자] 2000년 <가을동화>의 주인공 은서(송혜교)와 준서(송승헌)의 열연이 생각나는 곳, 고성 화진포 해변가.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주인공들의 슬픈 사랑 못지않게 운치있는 촬영지의 바다를 기억할 테다. 10년이 지난 지금 배우들의 모습은 달라졌어도 드라마 속 고운 모래와 바다는 잔잔한 파도와 함께 그때 느낌 그대로다.     
 

▲ 김일성 별장에서 내려다본 화진포 ⓒ천지일보(뉴스천지)

16km 자연호수와 갈대밭, 철새들의 보금자리인 화진포엔 역사 속 인물들의 별장과 기념관이 있다. 이승만대통령 기념관이 있고, 이기붕 부통령과 김일성의 별장이 있다. 세 인물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나 특히 이승만 정권의 실세였던 이기붕 부통령에 대한 기록은 다소 솔직하다.  

이기붕의 3·15부정선거와 4·19혁명에 대해 “정치깡패들을 이용해 각종 정치집회를 조직했고, 1954년 자유당 전성시대를 열어 권력의 2인자로 독주하였다”며 “이승만 정권이 몰락하자 맏아들 이강석의 총격으로 전 가족이 권총자살함으로써 권력의 2인자로서 부귀영화를 누려왔던 그의 정치역정을 마감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이기붕의 장남 이강석을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시켰던 일은 권력욕의 극치로 평가받고 있다. 의(義)를 저버리고 권력 위에 군림하는 자의 말로가 어떠한지 역사가 교훈하고 있는 대목이다.

화진포 설화의 주인공 이화진의 며느리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롯의 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시주하러 온 스님에게 소똥을 퍼준 시아버지 이화진을 대신해 용서를 빌었던 며느리에게 스님은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말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고개에 이르러 그만 뒤를 돌아보니 집이 물에 잠겨 호수가 된 것을 보고 애통해 하다 돌이 되어버린다. 구약성경의 롯의 처도 불심판 당하는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도망하는 중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됐다. 이 장면에서 두 이야기가 비슷한 점이 있다.

화진포는 설화 속 이화진의 이름에서 유래됐고 청정한 날엔 화진포 한가운데에 잠겨있는 금방아 공이에서 누런 광채가 수면에 비친다고 한다.

다소곳이 자리 잡은 고성 천학정 

▲ 다소곳이 자리 잡은 천학정, 자연에 대한 배려가 물씬 느껴진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고성 토성면 교암리 마을에 들어서면 소나무 숲이 우거진 작은 산이 있는데 그곳에 천학정(天鶴亭)이 있다. 남쪽으로 청간정과 백도를 바라보고, 북으로는 ‘미인의 걸음걸이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능파대가 보인다.

천학정은 주변 경관이 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천학정 옆 구릉에서 바라봤을 때 어떤 정자보다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린다.

일출명소로서 조금의 손색도 없지만 작은 산 안에 있기도 하거니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옛 정취를 더욱 느낄 수 있다. 연인과 가족이 천학정을 찾아 일출을 보게 된다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너른 절터, 푸르름으로 덮인 건봉사
 

▲ 건봉사 ⓒ천지일보(뉴스천지)

금강산 자락에 있는 건봉사는 융성했을 당시 강원 북부를 대표하며 설악산 신흥사, 낙산사, 백담사 등 9개 말사(末寺)를 거느리는 본사로서 국내 4대 사찰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6·25전쟁 때 이 일대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로 사찰의 대부분이 소실되어 폐허가 됐고 지금은 신흥사의 말사로 있다. 너른 절터가 전쟁 이전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건봉사는 사명대사가 6천여 명의 승병을 훈련시켜 왜군과 싸웠던 호국불교의 중심터이자 정토불교의 시발점이 되는 절로 알려져 있다. 또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약탈해갔던 불사리와 치아사리를 사명대사가 다시 되찾아와 건봉사에 봉안했다.

아담한 정자 ‘청간정’에서 누리는 100% 여유

청간정(淸澗亭)에서 부는 바람을 정자에 앉아 느껴본 사람은 안다. 소박하고 아담해 보이는 이 정자가 왜 관동팔경에 드는지 말이다. 에워싸듯 둘러싼 푸른 송림 오솔길을 지나면 파란 물결이 반짝이고, 뒤로는 명산 설악산의 능선이 펼쳐져있다. 누정의 위치를 선정하는 선인들의 탁월한 안목에 늘 놀라며 늘 감탄할 따름이다.
 

▲ 청간정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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