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다시 ‘제3의 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정치에서는 1997년 영국 노동당의 혁신 이후 ‘제3의 길’이 최대 화두가 되긴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 후 신자유주의 흐름이 다시 유럽 대륙을 강타하면서 양극화는 더 심화됐고 시민들의 고통도 더 가중됐다. 그럼에도 기득권을 쥐고 있는 기존의 거대 정당들은 선거 때 표만 달라고 했을 뿐 무능하고 무기력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직접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구체제의 거대 정당들에게 응징을, 이에 맞서는 신생 정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몰아주었다. 유럽 내 다수 국가에서 확인되고 있는 기성 정당들의 추락과 신생 정당의 돌풍이 그것이다.

한국에서의 제3의 길이란

유럽에서의 제3의 길이 정당 내부의 노선변화를 통해 새로운 지향성을 제시했다면 최근 유럽정치에서의 신생정당 돌풍은 당내 노선변화를 뛰어넘고 있다. 극우 정당부터 중도 및 좌파 정당에 이르기까지 각 나라마다 배경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정당 내부의 변화가 아니라 정치지형 자체의 변화를 촉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등장은 그 상징적인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정치는 어떤가. 우리도 지난 20대 총선을 통해 ‘국민의당’이라는 신생정당의 돌풍을 경험했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호남에 편중됐다는 한계가 있긴 했지만 정당득표율에서는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얻으면서 원내 1당인 민주당보다 앞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는 신생정당 돌풍과 맥을 같이 하는 대목이다.

이번에 한 가지 더 주목할 부분은 국민의당이 추구하는 정당 내부의 지향성도 ‘한국형 제3의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념과 지역을 볼모로 거대한 두 정당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면서 기득권적 독점 구조를 구축해 왔다는 것이 국민의당 입장이다. 대화가 아니라 대치, 정책이 아니라 정쟁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당은 정치노선의 재정립과 정치지형의 재구성을 동시에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중도 개혁의 지향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구체적으로는 안보의 보수성, 경제의 진보성 그리고 정치의 개혁성을 강조하고 있다. 신생정당으로서의 제3당의 위상 강화와 중도개혁 노선으로서의 제3의 길의 만남, 이것이 ‘한국형 제3의 길’을 설명하는 핵심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정치현실은 정치적 상상력보다 더 가혹한 법이다. 유럽정치가 그랬듯이 ‘제3의 길’은 당시 영국 등 유럽 일부의 특수한 정치 정세, 그리고 ‘토니 블레어’라고 하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과연 한국에서, 그리고 국민의당이 거대한 양당 독점체제를 깨트릴 수 있을지, 그리고 정권교체를 넘어 ‘정치교체’까지 이뤄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내년 지방선거가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다. 마침 국민의당이 오는 27일 전당대회를 연다. 길을 잃고 있는 지금의 국민의당을 제3의 길로 이끌 적임자가 과연 누구인지, 당원들의 선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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