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요모조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한 문 대통령
[세상 요모조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한 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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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8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났다. 문 대통령은 “오늘 제가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해서 가슴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정중한 사과였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정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대통령이 안전 문제에 대해 직접 사과를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간의 우리 역사를 볼 때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이 밝힌 사과의 내용 가운데 몇 가지 부적절한 표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성격의 말들을 교묘히 배합해서 사과의 진정성을 훼손했다. “정부는 결과적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고 피해가 발생한 후에도 피해 사례들을 빨리 파악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에서 “결과적으로”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핑계의 말이다. “피해자들과 제조 기업 간의 개인적인 법리 관계라는 이유로 피해자 구제에 미흡했고”라는 표현 역시 부적절하다. 이 문장은 “‘피해자들과 제조 기업 간의 개인적인 법리 관계’라는 핑계를 대면서 피해자 구제를 외면하거나 소홀히 했고” 정도의 표현으로 바꾸어야 한다. 사과는 진실에 기초해야 하고 사과문은 세심하게 써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는 또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사실상 안전 참사에 대해 국가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사과가 아닌가 싶다. 다른 안전참사에 대해서도 사과가 있어야 한다. 형제복지원 사건, 삼성백혈병 참사,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사건,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안전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국가의 이름으로 사과해야 한다. 사과와 동시에 국가가 이들 문제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합당한 배·보상, 재발방지를 위한 법과 제도 마련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551명이 목숨을 잃은 형제복지원 사건은 40년이 넘어가는데도 진상규명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국가가 사과는 물론 배상도 하지 않은 사건이다. 다른 어떤 사건보다도 먼저 사과해야 할 일이다. 삼성백혈병 참사와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사건은 한국의 거대 기업이 저지른 일이다. 한국타이어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혼맥으로 얽혀 있는 기업이기도 해서 지금까지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갔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촛불항쟁 정신은 적폐를 뿌리 뽑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 국회의 잘못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책임도 못 묻고 진상규명도 못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법적 제도적 대책도 마련 못한다는 것은 생명과 안전을 해치는 적폐에 눈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13일 안전단체들과 만남에서 삼성백혈병 피해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사건에 대해서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그 때는 후보였지만 이제는 집권자다. 말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문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들 문제는 가능하면 관여하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이런 사람들이 있더라도 대통령은 이들에 귀 기울이지 말고 정도를 가야 한다. 생명안전의 길에서 좌고우면하면 안 된다. 이번에 생명안전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면 다음은 기약하기조차 어렵다. 

국회 역시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저버리면 안 된다. 역사의 길목마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적시에 해야 할 일을 해내지 못하면 두고두고 지탄의 대상이 된다. 문 대통령이 국가의 이름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를 한 이 시점에 국회도 가만있으면 안 된다. 즉시 사과해야 한다. 국회는 그동안 생명안전 입법을 외면하거나 게을리 하고 심지어 방해까지 한 잘못을 통감하고 정중히 사과하기 바란다. 아울러 형제복지원 사건, 삼성 백혈병 참사,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진상규명과 실질적인 배·보상을 위한 법률을 만들어 생명을 빼앗긴 원혼을 달래고 가족들을 위로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피해구제를 거부당한 108명의 피해자도 구제가 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고 정부도 재정을 지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모든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매트를 생산 유통한 기업들에게도 책임을 지우라고 요구한 피해자 가족들에게 대통령은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SK케미컬과 애경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은 건 이해불가였다. 이들 기업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보상 실행 조치를 해야 한다. 

사람을 사망케 하거나 재해를 반복하는 기업과 원청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가 세게 분출했지만 국회와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산재에 대한 입증책임을 피해자에게 부과해서는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어렵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피해액의 30배 이상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기업 등 재해 유발자의 입증책임 부과 제도가 도입될 때 대통령 사과는 사과로 그치지 않고 진정한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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