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437년 7월 9일에 세종은 공법(貢法) 시행 방안을 지시했다. 호조는 1436년 10월 5일에 아뢴 것과 마찬가지로 수세(收稅)토록 보고했다. 

세종은 즉시 공법을 시행토록 지시했다. 그런데 7월 27일에 황해도 감사가 “금년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청컨대, 백성들의 소망에 따라서 옛 답험법(踏驗法)대로 하고, 곡식이 잘된 뒤에야 공법을 시행토록 하소서”라고 아뢰었다. 그러나 세종은 윤허하지 않았다.

8월 7일에 세종은 “지금 공법을 행하는 것은 본래 백성에게 편리하게 하려는 것이나, 생각해 보니 금년은 풍흉이 한결같지 아니하여, 시행 초기부터 전국적 시행을 한다면 근심이 일어날까 염려된다. 그러므로 금년에는 경상·전라 양도는 공법에 의하여 시행하고, 충청도는 4분의 1을 감하며, 경기도·강원도·황해도·평안도는 3분의 1을 감하고, 함경도는 2분의 1을 감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이러함에도 8월 22일에 경상도 감사가 공법 시행으로 인한 피해 구제를 건의했다. 

8월 27일에 도승지 신인손이 아뢰기를, “지금의 공법은 진실로 좋은 법입니다. 단지 금년은 약간의 풍년이 들었다 하나, 실농한 곳이 많아서 갑자기 공법을 행하게 되면 백성들이 힘들 것으로 염려됩니다. 근자에 들으니, 인심이 흉흉하고 신문고를 치면서 상언하는 자까지 있다고 합니다. 이 법은 흉년이면 백성들에게 해가 되는 것이오니, 우선 공법을 정지하고 풍년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했다. 

세종은 “6월 이전은 우로(雨露)가 적당해서 풍년이 되어 이 법을 시행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시행하게 했지만, 7월 이후에는 농사가 부실하니  이 법을 갑자기 시행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정한 것을 경솔하게 고칠 수 없으니 공법제조(貢法提調)에게 의논하라” 했다. 

영의정 황희와 이조판서 하연 등이 의논하기를, “실로 전하의 하교와 같사오니, 금년의 조세를 거둘 때에는 우선 전례대로 경차관을 나누어 보내서 손실에 따라 감하여 주소서” 하고, 찬성 신개와 판중추 안순 등은 “이미 시행하게 된 것을 경솔히 고칠 수는 없으니, 전손(全損)된 곳은 관원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고 조세를 감하소서” 했다. 

세종은 “제조들의 의논이 같지 않으니 정부와 육조가 함께 의논해 아뢰라” 했다.

8월 28일에 도승지·좌부승지가 의정부와 육조에 가서 의논하니, 참찬 최사강 등은 말하기를, “시행해야 합니다” 하고, 우의정 노한과 판서 황보인 등은 “금년만은 우선 정지하소서” 하고, 참찬 조계생은 “경차관을 각도에 보내어 각 고을의 풍년이냐 흉년이냐를 보고, 공법의 차등을 보아서 조세를 거두소서” 하고, 판서 권제 등은 말하기를, “영구토록 시행할 수 없습니다” 했다.  

도승지 등이 돌아와 아뢰니, 세종은 “공법은 옛일을 상고하고 지금을 참작해서 대신들과 더불어 의논하여 정한 것이고, 본래 백성들에게 편리하게 하고자 한 것이었다. 내가 부덕(不德)하여 20여년을 왕위에 있으면서 한 해도 풍년이 없었고, 해마다 흉년이 들었으니 이 법은 시행할 수 없겠다” 하고, 즉시 “각도의 조세는 공법을 버리고 예전대로 손실법에 의하도록 하라”고 명했다.

세종은 개혁도 좋지만 현실을 직시했다. 아무리 공법이 좋아도 민생이 무너지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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