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백중(百中)은 음력 7월 15일을 말한다. 백종(百種), 우란분재(盂蘭盆齋)라고도 하며 불교의 명절 중 하나이다. 

백중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국가적인 행사였고 전통적인 명절이었다. 나라에서는 종묘에 제사를 올렸고 민간에서도 조상을 모신 사당에 천신차례를 지냈다. 

오늘날 전통사회의 백중 풍속은 거의 사라졌으나 불교를 믿는 일부 가정에서는 절이나 무당 집에 가서 부모님의 왕생극락과 보은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는 “백중은 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우란분회를 열어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해 부처님께 공양하고 조상의 영전에 바쳤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정책으로 승려들만의 불교의식이 되고 말았다”고 기록했다. 

우란분재는 부처의 제자인 목련존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아귀지옥에서 구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음력 7월 15일 하안거를 마치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그 공덕으로 어머니가 지옥의 괴로움을 면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민속학자 진성기는 ‘남국의 민속’에서 백중을 ‘농신(農神)’으로 부른 관련 설화를 전했다. “제주도의 목동이 곡식과 가축을 지키려고 옥황상제의 명을 어겼고 이 때문에 노여움을 받아 스스로 자결했다. 그 후 농민들이 그가 죽은 날인 음력 7월 14일을 백중일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 그의 영혼을 위로했다”는 내용이다. 

사실이라면 백중은 본래 우리나라 고대 농신제일(農神祭日)이었던 것이 삼국시대 이후 불교의 우란분회의 영향을 받아 의미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백중에는 여러 풍속이 전해 온다. 농가에서는 백중날 머슴들과 일꾼들에게 돈과 휴가를 주어 즐겁게 놀도록 하여 ‘머슴의 생일’이라고 했다. 이들은 이날 특별히 장만한 아침상과 새 옷 및 돈을 받는데 이것을 ‘백중 돈 탄다’고 했다. 

백중 돈을 탄 이들은 장터에 나가 하루를 즐겼다. 이날 서는 장을 ‘백중장’이라 하여 들돌들기, 씨름 등 오락과 구경거리를 통해 마냥 즐길 수 있는 날이었다. 지역에 따라 집단놀이가 행해졌는데 이를 ‘백중놀이’라고 한다. 밀양백중놀이가 으뜸으로 지금까지 잘 전승보존 되고 있다.

이날은 그 해에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며 즐겼는데 이를 ‘장원례’ ‘호미씻기’라고도 한다. 백중이 되면 세벌 김매기가 거의 끝나 호미를 다 썼으므로 씻어서 치워둔다는 의미다. 

한편 노총각이나 홀아비 머슴에게는 처녀나 과부를 골라 장가를 들여 주고 살림도 장만해 주기도 했다. ‘백중날 머슴 장가간다’라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전통사회에서는 일 년에 두 차례 농촌축제가 있었다. 바로 정월대보름과 7월 백중이다. 백중날 축제의 주체는 머슴과 소작농이었고 지주들은 이들의 후원자였다. 

이날만큼은 바쁜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먹고 마시고 즐겼다. 백중날은 힘든 노동에서 하루 쉴 수 있었던 마을 축제였고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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