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채화

한광구(1944~  )

꿈처럼 안개가 자욱하네.
멀리 소등처럼 산이 누워있네.
봉우리 아래 펑퍼짐한 골짜기
아래 폭포가 흐르고
소풍가는 아이들이 보이네.
골짜기 따라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네.
마을 입구에 하얀 성당
솔숲 옆으로 방앗간
하얀 신작로 길로
눈이 똘망한 아이가 걸어가네

 

[시평]

우리의 어린 시절, 마을의 풍경은 대체적으로 이러했다. 멀리 소등 같은 산이 편안하게 누워 있고, 그 아래로는 작은 폭포가 하나쯤 물을 흘려보내고, 그 물이 흘러 내를 이루는 골짜기 따라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의 입구에는 작고 또 하얀 성당이나 교회가 하나 서 있었다.

마을은 그래서 평화롭게 느껴지고, 마을 사람들은 어쩌면 모두 한 집안 사람들인 양, 누구네 집안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젓가락이 또 몇 개인지 알 수 있을 듯했다. 아무러한 흉허물 없이, 아무 집이나 문을 열고 들어서도, “어서 와라” 하고 정겨운 아주머니가 맞아줄 듯한, 그러한 마을.

시인은 그러한 어린 시절의 마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산다. 한 폭의 수채화로 마음에 그려놓고 산다. 먼 곳으로 향하는 신작로, 하얀 신작로에는 타박타박 걸어가는 눈이 똘망한 아이, 그 아이가 그 하얗게 이어진 신작로를 걷고 걸어서, 오늘 이렇게 어른이 되었구나. 이제 어른이 되어 그 신작로를 걸어가던 그 아이. 그 아이가 살던 수채화 같은 마을, 마음 속 깊숙이  한 폭 그려놓고 살아가고 있구나. 다시 가고 싶은 그 시절을 가슴에 품고.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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