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준영 ㈜청하연미디어 대표가 지난 42년간 모아온 음원 500만곡을 보여주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오준영 ㈜청하연미디어 대표]

42년간 음원 500만곡 수집
저장용 컴퓨터만 60번 바꿔
서버가 번개 맞아 자료 잃기도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아찔

“음악 속에 우리 근현대사 담겨
과거 있기에 오늘날 음악 있어
국가 차원 ‘음악보존관’ 필요
저작권 문제도 해결 가능”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임성훈의 ‘시골길’, 이수영의 ‘하얀 면사포’, 김연숙 ‘초연’, 권진경의 ‘강변연가’. 1970년대 후반 한국 가요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곡들이다. 오란씨, 동서가구, 맛기차바 등 CM송도 우리 귓가에 익숙하다.

대중의 삶 속에 녹아 흐르는 이 같은 곡은 누가 만든 것일까. 그 주인공은 오준영 ㈜청하연미디어 대표(62)다. 과거 그는 서정적인 멜로디로 사랑을 받아온 ‘사월과 오월’로 활동했었다.

음악을 사랑하고, 한평생을 음악과 같이해서일까. 그의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서는 감수성이 절로 느껴졌다. 손짓 등에서는 섬세함이 묻어 나왔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 느껴졌다. 그를 만나니, 아름다운 선율이 담긴 곡들이 왜 오 대표의 손에서 탄생했는지가 절로 이해됐다. 그는 작곡가로서 90여편의 영화 음악, 150여곡의 가요, 30여편의 CM송, 20여편의 연극 음악 등을 만들었다.

◆영화·드라마 등 음원 500만곡 수집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곡가인 오 대표는 지난 42년간 특별한 일을 해왔다. 음원 500만곡을 수집한 것이다.

“제가 영화·드라마 음악을 굉장히 많이 만들었습니다. 음악을 만들어서 영화에 사용했는데, 한 번 쓰고 버리기가 아까웠죠. 그래서 하나씩 모았고 42년간 모으게 된 것입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500만곡이 됐습니다.”

음원 중에는 한국 뿐 아니라 외국 곡도 있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희귀한 곡도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19년 6월 첫 번째 판이 나왔습니다. 1931년쯤에는 김개송의 ‘장모님 때문에 망했네’라는 곡이 나왔습니다. 김개송의 원래 이름은 김개똥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름이 흔해 이름을 바꾼 거죠. 그런데 김개송이 ‘장모님 때문에 망했네’라는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는 이런 노래를 다 가지고 있으면 참 대단한 자료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500만곡의 음원을 보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악 1곡은 컴퓨터에 잘 들어가지만, 2~3만곡 정도 되면 하드가 꽉 차게 됩니다. 곡이 계속 쌓이다보니 용량이 큰 컴퓨터로 계속 바꿔야 했습니다. 42년간 컴퓨터를 55~60번 정도 바꿨습니다. 어림잡으면 200억 정도 사용한 거죠.”

음악이 저장된 서버가 번개를 맞은 적도 있었다.

“1982년도쯤 양평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어느 날 번개가 집에 떨어졌고, 하드 하나가 타고 말았습니다. 정말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드에 담긴 곡을 확인해 보니 2만여곡 이었습니다. 번개로 인해 한순간에 모두 사라져 버린 거죠. 그 곡을 다른 곳에서 일일이 다 찾아서 넣는데 6개월 이상이 걸렸습니다. 정말 힘들었죠.”

과거를 회상하던 오 대표.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한지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 오 대표가 카드 형태의 음반 매체 이용 시범을 보이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음악 속에 역사 고스란히 담겨있어”

오 대표는 음악 속에 우리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애국가는 물론, 한국 전쟁 직후에 만들어진 ‘이별의 인천항’, 해방 후 귀국선을 타고 돌아오는 이들을 표현한 이인권씨의 ‘귀국선’ 등의 노래에는 소중한 우리 역사가 그대로 담겼습니다.”

잠시 이인권씨의 ‘귀국선’ 노랫말을 들여다봤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한 자 한 자’의 가사에는 귀국선을 타고 오는 이들의 모습이 잘 표현돼 있었다. 해방을 맞은 이들의 기쁨. 이들의 감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 놓은 것이 있을까. 당대의 현실을 표현한 음악은 우리 역사를 알려주고 있었다.

“현재 K-POP 등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가수들은 1900년대의 음악을 듣고 자랐습니다.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음악도 있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1900년대의 음악을 소홀히 하고, 음악을 잃어버린다면 뒤늦게 후회를 할 것입니다. 그건 역사를 함께 잃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면 다시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음악보존관’을 만들어 우리 역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음악에는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이 담겨있습니다. 굉장히 소중한 것입니다. 이에 국가 차원에서 우리나라 모든 음악을 구축해 놓은 음악보존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음악보존관은 단순히 대표적인 가수의 CD 몇 장을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어느 한 가수의 이름을 검색할 경우, 해당 가수가 몇 년도에 어떤 노래를 불렀고, 당시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등이 모두 검색되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충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음악보존관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다. 저작권 분쟁이 일어났을 때,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됐을 경우, 노래 제목을 치면 저작권자를 정확히 찾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있다. 하지만 충분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지 않아 저작권 문제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특히 오래된 노래일수록 저작권자가 불분명해 분쟁은 더 심한 상황이다. 오 대표는 “지금은 우리나라 음악의 역사가 없어지는지, 살아남는지의 기로에 서 있는 중요한 때”라며 음악보존관 설립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NFC 기능 이용 카드 형태 음반 매체 개발

아울러 그는 급변하는 음반 시장에 발맞춰 카드 형태의 음반 매체를 개발해왔다.

“처음에는 LP판으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이후 카세트테이프, CD 등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CD도 플레이어가 있어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었죠. 만약 CD가 없어진다면, 그다음 음악을 기록하는 방법이나 매체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게 문제였죠.”

그는 국민이 음악을 쉽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NFC 기능을 이용하는 카드 형태 음반매체를 개발했다. 4년간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었다.

NFC 기능을 이용하는 카드 형태 음반 매체는 클라우드 서버에 있는 음악을 듣는 것이다. 이 카드 형태의 음반 매체는 26개의 특허도 받은 상태다.

이용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V+뮤직플레이어’를 설치한다. 핸드폰에서 NFC기능(읽기/쓰기 모드)을 켠 후, 카드 형태의 매체를 핸드폰 뒷면에 대면 음악을 듣는 사이트(V+뮤직플레이어)가 실행된다. 이곳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해서 들으면 된다.

클라우드 서버에 있는 음악을 직접 이용하니 음질도 최상이었다.

“보통 스트리밍 서비스로 다운로드하면 매체를 자주 거치니 미디어의 음질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클라우드에 있는 것을 직접 골라서 음악을 듣습니다. 거치는 곳이 없어 음질이 좋습니다.”

향후 카드 형태의 매체는 가수별로도 제작돼 보급될 예정이어서, 음반시장에 획기적인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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