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경기가 야구다. 특히 프로야구에는 팀마다 힘과 배팅기술이 뛰어난 강타자와 교타자가 즐비하다. KBO리그도 장기레이스이다. 그런 만큼 인재스카웃과 동계훈련을 통해 미리미리 투수력을 잘 갖춰둔 팀이 유리하다. 크게 나눠 강속구 투수와 기교파 투수가 있다. 일단 위력적인 패스트볼을 갖고 있는 투수가 경쟁력에서 앞선다. 보통 승용차 주행 속도보다 빠른 시속 150㎞를 오르내리는 직구는 타자가 정확히 때려내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무브먼트(movement)라고 하는 볼 끝에 힘이 실리면 속된 말로 ‘긁히는 날’이 된다. 제구력 좋은 투수도 한 몫 톡톡히 해낸다. 손자병법은 최고의 전술이 적을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 상대 타자를 속이는 공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이닝이터’ 유희관(31, 두산)과 특급마무리 정우람(32, 한화) 등은 타자를 압도하는 불같은 강속구로 승부하는 투수가 아니다. 변화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타이밍을 뺏는다. 코너를 파고드는 칼날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농락한다. 투수들은 빠른 직구와 느린 변화구를 적절히 섞어 던진다. 직구에만 의존하거나 오로지 변화구만 던진다면 궤적을 예상한 타격이 가능하므로 성공하기 어렵다. 보여주는 공과 승부구를 지략과 함께 타임리하게 섞어 던져야 시너지가 발생한다. 타자들은 본능적인 감각과 수읽기로 상대 투수들을 연구해가며 대적한다. 투수놀음, 투수 한 사람의 팔에 전체 경기의 사활이 걸려 있다. 정치나 외교도 비슷하다. 국가적으로는 대통령은 투수와 같은 역할이 아니겠나 싶다. 파이어볼러건 테크니션이건 불세출의 경기운영능력으로 팀을 책임지는 에이스처럼 큰 정치력을 국민 앞에 발휘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투수와 대통령은 똑같이 정상(頂上)의 고독을 느끼는 공통점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학사전에 없는 ‘코리아패싱’이라는 용어까지 나왔다. 미·북, 미·중 혹은 미·중·일이 빅딜을 통해 한국을 왕따시킨다는 것. 한국은 북핵 문제의 직접 당사자이다. 그런데도 입지가 좁아질 대로 좁아져 버렸다. 북한은 북한대로 ‘통미봉남’ 정책으로 철저히 남북대화를 외면하고 미국만 겨냥했다. 여기에 ‘8월 위기설’까지 나돌아 많은 국민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운전을 정말 한국이 주도하느냐와 FTA 개정 문제도 논란이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트럼프 미 대통령 및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갖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관련한 대북 공동 대응 의지를 확인했다. 한·미·일 공조체제가 긴밀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보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모처럼 여유롭게 휴가를 다녀왔다. 이 부분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가는 만큼 국민은 평소처럼 흔들림 없이 생업에 종사하고 여건에 따라 휴가를 즐겨도 문제없다는 뉘앙스가 담긴 것이다. 국가 안보는 국군장병을 비롯한 전 국민이 국력으로 지키는 것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전전긍긍하며 정해진 연차휴가마저 취소하는 모양새에 비해서는 훨씬 낫다. ‘코리아패싱’을 선언하려던 대한 투자자가 문 대통령의 의연한 태도를 접하고 마음을 고쳐먹을 수도 있을 터.

“핵전쟁은 일어날 수 있다(It could happen)”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커버스토리로 ‘한반도 핵전쟁 가상 시나리오’를 실었다. 미·북 대결이 어떻게 핵전쟁으로 비화하는지 현실감 있게 그렸다. 미국에서는 ‘선제타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방전쟁’이라는 말도 흘러나왔다. 경계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때임은 분명하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한반도에 휘몰아친 격동의 폭풍우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에 의한 36년의 식민지배. 이는 앞서 1905년 가쓰라 다로 일본 내각총리 대신과 미국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 사이에 맺어진 비밀협약의 결과였지 않은가. 밀약으로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묵인 아래 한반도의 식민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이었다. 2차대전 말미 열린 카이로회담, 얄타회담, 포츠담회담도 마찬가지. 그 결과 한반도가 두 동강이 나 지금처럼 세계유일의 분단국가가 된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모두 우리 의사와 관계없는 비밀외교, ‘코리아패싱’의 결과였지 않은가.

북핵으로 비대칭전력 문제가 남·북 간에 확실히 불거지고 말았다. 자주국방 논의는 만시지탄이다. 미사일 탄두 중량 확대, 핵잠수함 추진, 전술핵 재배치는 물론, 일각에서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8.15광복절과 10.4선언 열돌 등을 계기로 물밑대화와 특사교환 등 상식을 뛰어넘는 남·북외교도 검토해야 한다. 강한 힘이 바탕이 된 지혜로운 외교·협상력이 절실하다. 프로야구 투수처럼 강력한 패스트볼에 현란한 변화구를 가미해야 하겠다. 팀의 에이스가 상대 의표를 찌르는 멋진 볼배합으로 경기를 압도해나가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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