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들 ⓒ천지일보(뉴스천지)

서울역사박물관 ‘민국의 길, 자유의 길’ 展
격동하는 시대… 모든 재산 처분 후 서간도로 망명
신흥무관학교 세우고, 의열단 등 항일무장투쟁 주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나라가 외세에 침탈당할 때 나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외세와 하나 돼 민족의 살을 뜯어 먹는 자가 될 것인가, 외세에 맞서 독립 운동을 펼칠 것인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독립 운동을 펼쳤던 인물들이 있었다. ‘우당 6형제’다. 우당 6형제는 임진왜란 당시 명재상(名宰相)인 백사 이항복의 10대 손으로 소론명문가 출신 서울 사람들이었다. 이건영, 이석영, 이철영, 이회영, 이시영, 이호영 등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의 ‘민국의 길, 자유의 길’ 전시에는 우당 6형제의 독립운동과 나라를 살리기 위한 애국정신을 담아놓았다.

▲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 ⓒ천지일보(뉴스천지)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 고민

나라가 어려울 때 해야 할 일은 누군가가 알려주는 게 아니다. 또 그런 역경 속에서 백세청풍(百世淸風)의 가문이 태어나는 것이다. 우당 6형제가 그랬다. 그들이 태어나 활동하던 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 사회는 전례 없이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었다.

개항으로 새로운 문물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제국주의 일본은 노골적으로 한반도를 병합하려 했다. 6형제는 격동의 시대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회영은 당시 평민이 주류인 상동교회에서 자유와 평등의 문제를 따져 보기로 했고, 이시영과 함께 개항으로 유입된 새로운 문물의 연구에 매진했다. 두 형제는 “백성이 깨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신념 하에 교육 운동 등에 앞장섰다.

또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조약들에 대한 무효화 투쟁, 뜻있는 동지들을 결속해 나라를 지키는 조직 활동, 다양한 애국계몽활동을 펼쳤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운동의 역량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는 일이었다.

▲ 6형제 서간도 망명논의 상상화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천지일보(뉴스천지)

◆서간도에 올린 무장 독립운동의 깃발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 합병됐다. 6형제는 치밀한 준비 하에 모든 재산을 처분해 서간도로 떠났다. 사실 6형제는 마음만 먹으면 누대(累代)에 걸쳐 형성해 온 문벌의 명예와 막대한 재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유복하게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40만원(현재 약 600억원) 상당의 자금을 마련해 서간도로 떠났다.

이들은 자신들의 부(富)보다는 국가를 살리는 길을 택한 것이다. 가족과 노비를 포함한 50여명은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넌 뒤 다시 긴 마차 행렬로 혹한을 뚫고 장정에 들어섰다. 풍토병과 마적대가 시시 때때로 이들을 괴롭혔고, 중국 관리와 토착민들의 비협조도 이들의 서간도 정착을 어렵게 했다.

제국주의 일본과 싸우기 전에 극복해야 할 것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1911년 4월 자치조직 ‘경학사’를 세웠다.

황무지를 개간해 농지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그해 5월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인 신흥무관학교(첫 이름은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이들에게 서간도는 꿈과 눈물의 터전이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1920년 동안 약 3500명이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은 봉오동, 청산리전투 등에서 활약했고, 의열단 등의 단체에서 항일무장투쟁도 주도했다. 1940년대 초 광복군의 중추도 모두 이학교 출신이었다.

▲ 담뱃대와 담배쌈지, 골패와 참빛ⓒ천지일보(뉴스천지)

◆자유로운 나라에 살기 위한 걸음

3.1운동을 기점으로 민주주의와 공화제를 바탕에 둔 새 나라 건설의 기운이 충만했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 이회영과 이시영 형제 등 독립운동가가 중국 상하이에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서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각자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흩어졌던 6형제는 다섯째인 이시영을 제외하고 광복을 맞이하지도 못한 채 각기 다른 곳에서 눈 감았다.조국 결의를 위한 짐은 이시영이 어깨 위에 짊어지게 됐다.

광복 후 이시영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으로 선출됐지만, 6.25전쟁 중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와 자유당 정권 비리 전횡에 실망해 부통령직에서 사임했다.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6형제의 꿈은 미완으로 남았다.

하지만 나라가 위험할 때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나라의 평화와 광복을 위해 싸워 나갔던 이들의 용기는 역사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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