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서소문역사문화공원 공사 현장(위). ⓒ천지일보(뉴스천지)

구의회 반대 민족진영까지 가세
위기 봉착한 ‘서소문공원 사업’

천주교, 사업 이후 첫 집단 반발
중구의회에 16만여명 서명 전달

민족진영, 사업 중단에 힘 실어
“천주교 단독성지 말도 안 돼”

[천지일보=차은경 기자] 천주교 성지로 꾸며질 예정인 서울 ‘서소문역사문화공원’ 조성 사업이 구의회 반대로 예산 편성이 미뤄지면서 표류하는 모양새다.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면서 천주교계가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섰지만, 민족진영까지 사업 중단에 힘을 실으면서 사업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서소문공원 공사는 작년에 이월된 예산으로 이번 달까지는 정상적으로 운영되지만, 이번 달이 넘어가게 되면 공사 중단은 불가피하다.

이에 서소문공원 사업 초기부터 큰 관심을 보여왔던 천주교계는 집단 반발에 나섰다. 지난 1일에는 구의회를 찾아가 서명운동 명부를 전달했다. 그러자 민족종단의 역사 내용을 서소문 사업 콘텐츠에 포함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해왔던 천도교 등 민족종교 진영도 “서소문공원을 민족의 역사공원으로 조성하라”며 논란에 가세했다.

서소문역사문화공원 사업은 현재 근린공원인 서소문공원을 리모델링해 조선 후기사회의 모습 체험하는 역사공원이자 천주교 순교성지로 조성하는 것이 사업의 주요 골자다. 당초 총사업비 460억원(국비 50%, 시비 30%, 구비 20%)을 투입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575억원으로 비용이 늘었다. 지상 공원은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보여 주는 공간으로, 지하는 순교자 추모관을 포함한 기념공간으로 조성한다는 청사진과 조감도까지 제시됐다.

원래 서소문공원 부근인 ‘서소문 밖 네거리’는 원래 조선시대 죄인들을 처형하던 장소로 특히 신유박해(1801년)·기해박해(1839년)·병인박해(1866년)를 거치면서 수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처형됐다. 이 중 44명은 성인으로 시성됐고, 25명도 추가로 성인으로 시성될 예정이다. 지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 시복 미사에 앞서 이곳을 참배해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서소문공원은 천주교인뿐 아니라 조선의 실학자와 개혁사상가들도 핍박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역사적 장소다. 동학(천도교)의 접주인 녹두장군 전봉준이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천도교 등 민족종교 진영과 시민단체는 서소문공원 사업이 특정 종교를 위한 성지 조성이라며 반발해왔다. 이들은 2014년 ‘서소문역사공원 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를 결성해 전면적인 행동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월 기공식이 열려 내년 6월 완공 예정으로 공사가 순탄하게 진행돼 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부터 구의회가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며 예산 편성을 미루자 천주교계는 집단 반발에 나섰다. 현재까지 공사는 약 10% 진행됐고, 공원 조성과 건물 완공 등이 남아 있다. 서소문공원 공사는 작년에 이월된 예산으로 이번 달까지는 정상적으로 운영되지만, 이번 달이 넘어가게 되면 공사 중단은 불가피하다. 예산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면 매월 1억 2000만원의 공사장 관리 비용이 낭비될 뿐만 아니라 사업이 완전히 무산될 경우에는 그동안 들인 국·시비를 반납해야 한다.

▲ 1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홍근표 신부 등 천주교 관계자들이 서소문역사공원·순교성지 조성사업이 표류하는 것과 관련해 서울시 중구의회를 방문, 공사 재개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명부를 전달했다. (출처: 연합뉴스)

◆“절차상 문제 有” vs “이유 명확치 않아”

서소문공원 조성사업에 반대하는 일부 구의원들은 구청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법에 따르면 10억원 이상의 구유재산을 취득하거나 변경할 때에는 예산이 의결되기 전에 구유재산 관리계획(변경계획)을 구의회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구의회는 구에서 심의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달 12일까지 6차례에 걸쳐 관련 안건을 부결시켰다.

하지만 중구청은 구의회가 내놓은 예산 편성 반대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구의회가 지난 2014년부터 예산을 통과시켰으며, 지난해 12월 구의회가 감사원에 요구한 감사 청구 결과 ‘(서소문역사공원 리모델링 사업은) 감사 필요성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전체 포지션에서 구비가 차지하는 (예산) 비중은 적지만 내년에 자재를 구매하는 등 다 필요한 예산인데 (예산을) 주지 않으면 사업에 큰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며 “예산확보만 되면 정상적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구의회는 이제야 예산을 부결시킨 데 대해 “뒤늦게 절차 누락 사실을 인지하고 구의회에 구유재산 관리계획안 승인을 요청해왔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 의회 승인절차 누락을 미미한 절차상의 하자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선 “100억원이 넘는 구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대규모 공사를 추진하면서 예산 집행과 사업 추진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규정된 의회 승인절차를 빠뜨린 것은 가볍게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중구의회는 그간 집행된 예산에 대한 적정성을 살펴보고, 사업에 다른 문제점은 없는지 전반적으로 재검토해보기 위해 행정사무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해 6월 26일부터 조사특위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천도교, 동학 등 민족종교 진영 등으로 구성된 ‘서소문역사공원 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가 3일 서울 중구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시각차 드러내는 천주교-민족진영

중구 의회의 제동으로 공사 중단 위기에 처하자 천주교계가 종전과는 달리 본격 개입하기 시작했다. 지난 1일 천주교계는 중구의회를 방문해 서소문역사공원·순교성지 조성사업공사 재개를 촉구하며 신도와 사제 등 15만 9000여명의 이름이 올라간 서명운동 명부를 전달했다.

이어 서울대교구 원종현 신부는 교단지를 통해 “사업이 중단된다면 아주 낭패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중구청과 대화해 왔지만 교구도 의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중구의회 또한 교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며 “서명 전달과 더불어 중구의회와 긴밀하게 대화해 교회의 바람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천주교계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천도교 등 민족종교 진영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 공세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구의회의 서소문공원 사업 예산 보류가 당연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나아가 이들은 “중구의회는 서소문공원 사업에 대한 내년도 예산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국보 범대위 기획위원장은 “가톨릭에서는 (서소문공원을) 단독 순교성지라고 하려고 하지만, 전봉준이나 동학과 관련된 인물들도 효수된 장소였다”며 “그런데 천주교 단독성지로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나 중구청은 범대위가 제시한 자료가 추측성 발언이 많고, 역사적 고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업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자료가 입증된다면 사업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민족종단에서 주장하는 역사적인 부분도) 담을 수 있다면 반영을 해야 할 것”이라며 “그러나 역사적 고증을 했을 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서소문공원 공사는 현재 구가 확보한 예산이 모두 소진되는 이달 말까지 이후의 상황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구청과 중구의회, 그리고 천주교와 천도교 측이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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