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 교황. (출처: 뉴시스)

트럼프 최측근 배넌 향해 ‘종말론’ 지지자로 비난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과 미국 보수주의 가톨릭지도부 간의 불화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이후 자본주의 대국인 미국이란 토양 속에서 형성돼온 미국 가톨릭교회와 자본주의를 혐오해온 중남미 출신 교황 간의 불화가 교황 측근과 반대진영 사이에서 노골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교황청(바티칸) 언론매체인 예수회 잡지 ‘라 치빌타 카톨리카’ 7월호를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영국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도 이 잡지에 미국 내 가톨릭이 변질하고 있다는 비판성 논평이 올라왔다는 소식을 알렸다.

프란치스코 교황 측근 2명이 가톨릭매체를 통해 미국의 보수파 가톨릭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에세이를 게재하면서 양측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글을 쓴 안토니오 스파다로 ‘라 치빌타 카톨리카’ 편집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가톨릭 신자인 배넌을 거론하며 그가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존 러시두니의 신봉자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종말론을 좇는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극단주의와 별다른 점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스파다로 편집장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적극 지지한 보수파 백인 가톨릭계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과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보수적인 미국의 가톨릭교회가 미국 내에서 심화하는 정치적 양극화에 위험스럽게 빠져들고 있다”고 꼬집고 나아가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기반으로 하는 미국 복음주의적 강경 가톨릭계의 세계관은 (이슬람) 지하디스트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경고했다. 또한 “미국의 복음주의적, 초보수적인 가톨릭이 정치적 공간에 종교적 영향력을 주입하려는 이념적 기도로 로마가톨릭 신앙을 타락시킬 위험을 보이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바티칸-美보수가톨릭 갈등 수면위로

교황청 언론매체에 실린 에세이를 둘러싸고 미국 가톨릭 진보·보수 진영 간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진보 성향의 마시모 파기올리 빌라노바대 신학교수는 “이번 에세이가 가톨릭 교회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바티칸과 미국, 그리고 미국의 가톨릭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하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반면 보수 가톨릭계는 에세이 내용이 본질을 왜곡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보수 성향의 찰스 채펏 필라델피아 대주교는 에세이 저자들을 러시아 공산혁명을 지지했던 ‘유용한 바보들’이라고 비꼬았다. 그는 “종교적 자유와 다른 핵심 이슈들에 대한 가톨릭과 복음주의 간 협력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넌이 운영했던 보수 매체 브레이트바트는 ‘교황 보좌관들이 편협한 글로 미국의 기독교도들을 매도했다’는 제하의 반론문을 실었다. 이 매체는 “그들은 트럼프와 배넌을 공격하는 대신 미국 자체를 공격했다”고 비난했다. 배넌 본인도 “교황 측근들이 자신을 ‘깨어나게’ 했다”는 짧은 이메일로 반응을 보였다.

NYT는 이번 에세이가 교황의 재가를 받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바티칸의 승인을 받은 매체에 게재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교황은 미국 보수 가톨릭계를 정면으로 비판한 에세이 메시지와 관련해 어떠한 질책도 하지 않고 있다. 바티칸 전문가들은 ‘라 치빌타 카톨리카’가 바티칸의 감수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만큼 교황이 측근의 글을 통해 속내를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교황과 바티칸 측의 의도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