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lace. wool. 65x107x70. 2014 ⓒ천지일보(뉴스천지)

황혜정 작가 첫 개인전 ‘Ambiguous Lines’전
섬세한 드로잉과 질감
묘한 분위기 자아내
“순수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황혜정(32)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면 강한 이미지 때문에 쉽게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두 번째 볼 땐 그림 안 개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궁금해진다.

카라스갤러리 전속 작가인 황혜정 작가는 8월 한달 간 첫 개인전인 ‘Ambiguous Lines’전을 연다. 배카라 카라스갤러리 관장은 황혜정 작가를 “이제 빛을 발하는 진주 같은 작가”라고 소개했다. 개막 전인 1일 서울 용산구 카라스갤러리에서 황혜정 작가를 만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들을 모조리 내 바깥으로 밀어버린다. 그러다 발 하나, 손 하나가 나에게로 넘어오는데 문득 이들이 진짜 내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이들을 따라 그들이 왔던 곳으로 들어가 본다. 어둡고 꽉 막힌 그곳은 아늑하고 편안하다가도 금세 답답하고 잡아먹힐 것 같은 두려운 기분이 든다. 나는 다시 처음의 나로 돌아간다. 경계선들이 군데군데 희미해졌다.” -황혜정 작가노트 中-

첫 개인전인 만큼 황 작가는 전시에서 지금껏 제작한 작품을 조금씩 모두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Ambiguous Lines ▲Solace ▲Absence ▲Things of the unconscious ▲An escape ▲Rebellions child 등 총 6가지 시리즈로 구성된다. “작업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나라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내가 아니었거나 혹은 나는 절대 아니라고 했던 모습이 현실에서는 사실 나였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작업은 ‘나’라는 어떤 경계선을 긋고 그 경계선을 넘어갔다가 돌아왔다가 반복하고, 지웠다가 다시 그렸다가 하는 하며 순수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전시 명이기도 한 ‘Ambiguous Lines’에 대해 황 작가는 “현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과정이라는 것 때문에 모호해 보이고 불분명해 보일 수 있는데 그거 자체가 좋다”며 “그 모습이 제 현재 상황이기도 하다. 표현하기 모호한 것들은 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다. 이상한 것과 아름다운 것의 경계가 제 작업의 큰 주제”라고 설명했다.

▲ Things of the unconscious(mixed media. 90x120. 2015) 앞에 선 황혜정 작가. ⓒ천지일보(뉴스천지)

작품 속에 묘사된 개체는 요가를 하는 것처럼 기괴한 자세를 하고 있다. 색감은 차분하고, 개체의 얼굴은 털이나 솜으로 가려져 볼 수 없다.

이는 모두 황 작가 내면의 모습들이다. 황 작가는 “얼굴이 없는 것일 수도, 시각을 차단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섬유 미술을 전공해 질감에 관심이 많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촉각에 대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 눈썹을 매일 만지고 잤다. 어머니가 직장생활을 하셔서 애정이 그리웠던 것 같다. 지금도 스트레스 받으면 제 눈썹을 만진다”며 “다 큰 어른인 제가 눈썹을 만지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비밀로 했는데 이런 부분이 작업과 연결됐다”고 덧붙였다.

“슬프거나 힘든 일 있을 때 내 방 침대로 가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뒤 울고 싶잖아요. 한치의 틈도 없이 밀착되는 느낌이 들고, 이불을 끝까지 덮어 답답하고 숨 막히는 가운데 안도감이 생기죠. 이런 부분들이 연결돼 작품 안 개체가 얼굴을 수그리며 감추고 있는 거예요. 나만의 도피처처럼 혼자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거죠.”

하지만 이불 속에서 영원히 지낼 순 없는 법이다. 그는 “저는 이불 안에 있으면 너무 행복하면서 다시 현실로 나와야 하니까 불안하다”며 “평안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엄마 배 안에 있을 때 자궁 안은 안락하지만 태어나면서 버려야 할 공간이다. 정체성을 생성하는 동시에 파괴되는 공간”이라고 전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질감이다. 황 작가는 눈썹과 비슷한 털, 폭신하고 고운 솜, 동물의 부드러운 털 등으로 질감을 표현했다.

황 작가는 “촉감은 주관적이다. 여러 가지 샘플을 만들어 조사한 적이 있는데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만지는 법, 느끼는 방법 모두 달랐다”며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눈썹 같은 촉감을 다른 사람은 징그럽게 느낄 수 있다. 저는 변태처럼 오히려 사람들이 이상하게 느끼는 게 더 좋더라”고 회상했다.

▲ 다양한 질감을 표현하는 재료들. ⓒ천지일보(뉴스천지)

황 작가의 작품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뚜렷하게 달라진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이 비뚤어진 시선으로 본다면 작품이 순수하게 보일 리가 없다.

“작품을 너무 섹슈얼하게만 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제 작업 키워드에서 섹슈얼을 빼고 싶어요. 제가 의도한 것은 자연스럽고 동물적인 본능이죠. 그래서 그런지 ‘예쁘다’ ‘아름답다’ ‘멋지다’는 표현보다 ‘어! 뭐지?’라고 신기해하는 게 좋아요. 안 예쁜데 끌리고, 눈길이 가는 작품이요. 그런 작품을 하고 싶어요.”

황 작가는 내년 11월 상해에 있는 윤아르떼갤러리에서 열릴 전시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하고 재밌는 작품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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