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돈을 벌려고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치를 해도 반드시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부자가 되는 일을 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 부자를 이용해 강자가 되려고 해도 강해지지 않는다. 강자가 되는 방법을 알아야 강자가 될 수 있다. 강자라고 반드시 모든 적을 이길 수는 없다. 이기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겼다고 반드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와 어떻게 이득을 나누는지를 알아야 완벽하게 제압을 할 수가 있다.”

관자 제분에 있는 말이다. 모든 일은 원인을 알아야 제대로 처리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지피지기란 어떤 상황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정해우는 장자 양생주에 등장하는 유명한 우화로 장자 특유의 풍자와 해학이다. 포정이 혜문공을 위해 소를 잡았다. 소의 머리와 다리를 어깨에 올려놓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쪽 무릎으로 누르면서 고기를 잘라냈다. 고기가 가죽과 뼈에서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경쾌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 혜문공은 어떻게 그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느냐고 물었다. 포정이 칼을 놓고 대답했다.

“기술보다 도가 중요합니다.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보이는 것이 모두 소뿐이었습니다. 3년이 지나자 소는 보이지 않고 갈라내야 할 부분만 보였습니다. 지금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소를 봅니다. 저의 눈과 손과 마음의 작용은 멈추고, 저도 알지 못하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신기하게 작용합니다. 소의 신체조직을 따라서, 살과 뼈와 가죽 사이에 있는 틈에 칼을 넣어 갈라 낼 수 있는 부분을 따라갑니다. 단단한 뼈와 살이 있는 곳을 무리하여 가르지 않습니다. 요즈음 제법 소문이 난 요리사들도 1년에 한 번은 칼을 바꿉니다. 고기를 잘못 잘라서 칼날이 무뎌졌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한 요리사도 한 달에 한 번은 칼을 바꿉니다. 억지로 뼈를 자르느라고 칼날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칼은 19년이나 사용했습니다. 그동안 4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보시다시피 막 숫돌에서 들어 올린 것처럼 예리합니다. 뼈와 살이 붙어 있는 관절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두께가 없을 정도로 얇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에 넣기 때문에 칼날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더라도 넉넉하게 여유가 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칼날을 집어넣을 때마다 긴장이 됩니다. 시선은 한 곳에 집중되고, 손놀림도 둔해지며, 칼의 움직임마저 흔들립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흙더미가 무너지듯 저절로 고기가 해체되어 밑에 수북하게 쌓입니다. 저는 칼을 잡고 멍하니 서서 제가 한 일도 잘 모릅니다. 한참이 지나 제가 한 일을 알고 나면 비로소 만족해 칼을 깨끗이 닦아 제자리에 둡니다.”

포정해우에서처럼 정보와 그것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포정이 소의 신체구조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19년 동안 4천 마리의 소를 잡고도 칼을 바꾸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능한 지략가는 당장 필요한 정보만 중요시하지 않는다. 많은 정보를 수집할수록 다양한 전략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정이 칼을 넉넉한 공간에 넣었다는 말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는 의미이다. 관중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지녔다. 그는 사물의 연유를 파악해야 승리를 위한 필연적 조건이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복잡하고 격렬한 정치투쟁에서 정적들은 자기의 실질적 정황을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상대를 이용해 계략을 펼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면 방관자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도 중요하다. 방관자적 입장이 돼야 쌍방의 약점이 보인다. 사물은 수시로 변하므로 변화의 요인을 파악하는 것이 승리에 이르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보이는 것만 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기 싫은 것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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